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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독후감 ] [ 책추천 ] < 팀 켈러의 용서를 배우다 , 팀켈러 >
    그믐🌚 독후감/그믐🌚 책 2022. 12. 23. 23:18

    팀 켈러의 용서를 배우다
    :왜 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
    39p. “어떤 이들은 35절,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를 피상적으로 읽고, 예수님의 이 말씀을 우리가 먼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하나님의 용서도 얻어 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이 비유의 서사는 그런 해석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왕이 먼저 용서를 베풀었다. 왕에게 받은 용서가 종이 동료를 용서하는 기초이자 동기가 되었어야 한다는 말이 분명 그 다음에 나온다. 예수님의 이 마지막 문장은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이 변화되어, 그분이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가 참으로 회개해 하나님께 용서받은 게 아니라는 증거다.”

    42p. “용서하지 않은 종의 비유를 우리도 그렇게 들어야 한다. 마태복음 18장의 다른 구절들은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본연의 철저히 변화된 관계를 보여 준다. 교만하지 않고 겸손히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1-5절), 다른 사람의 허물을 참아주고 이해하는 것(6-10절), 기꺼이 화해해 깨진 관계를 봉합하는 것(11-17절), 이런 것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다.”

    43p. “당신이 복음을 믿으면서도, 그러니까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값없는 용서로 구원받았다고 믿으면서도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면, 이는 최소한 당신의 삶에서 복음의 실제 효과를 막고 있다는 증거다. 또는 당신이 복음을 아예 믿지 않으면서 믿는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경우든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으면 영적인 옥살이를 자초한다. 비유 속의 마지막 행위는 용서하지 않은 종을 옥에 가두는 것인데, 이는 가혹해 보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다. 누군가에게 분노와 악감정을 품은 채 계속해서 상대를 마치 당신에게 의무와 빚을 진 사람처럼 여기면, 그때 생겨나는 자기중심성이 바로 감옥이다.”

    78p.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장 23-24절; 3장 9절.
    바로 이런 공동체에 용서가 피어나고 관계에 치유가 일어난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이런 공동체를 세울 것인가?”

    110p.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그분의 성품과 행하심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 경외가 역설적이라는 사실이다. 은혜와 용서와 사랑을 더 많이 경험할수록 우리는 자신에게서 더 벗어나며, 그제야 비로소 경탄과 경이에 젖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위대하신 그분께 복종한다. 자신이 용서받았음을 진실로 깨달으면 대충 살거나 독자적으로 행세하지 않고 그분의 주권에 공손히 순복하게 된다.”

    125p. “기독교적 용서의 열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십자가가 용서의 근거인 이유는 십자가 덕분에 하나님이 그분의 정의를 타협하지 않고도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을 분 아니라, 우리에게도 이 십자가가 가해자를 용서할 동기와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성난 피해자인 우리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지를 깨달으려면 최고의 피해자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용서하셨는지를 봐야 한다. 그분이 용서하시는 방식이 바로 십자가다.”

    166p. “인간의 죄가 보이거든…… 늘 겸손히 사랑하기로 결심하세요. 단호히 그렇게 결단하면 온 세상이라도 정복할 수 있습니다. 겸손한 사랑은 놀랍도록 강합니다. 모든 것 중에 가장 강하며, 그런 것은 다시 없지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169p. “자신도 똑같이 정죄받아 마땅한 존재로 보는 겸손, 그리고 자신의 신분이 그리스도께 사랑받는 존재임을 아는 기쁨, 이 두 마음이 없으면 복수심을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용서와 자비를 받고도 용서와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면, 실제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수용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며[마가복음11장] 22-24절에 하나님과의 관계의 표현으로 제시된 기도를 우롱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요지는 아직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았음을 깨닫거든 즉시 용서하라는 것이다.”

    210p. “나는 내가 이 희생적인 은혜의 수혜자임을 안다. 예수님이 나를 살리려 지옥의 심장부까지 가셨고 나를 위해 사랑으로 순종하셨음도 안다. 바로 그것이다. 그 사랑이 나를 변화시킨다. 그것이 눈물과 경탄과 희열과 활력을 낳는다. 그분의 희생적인 사랑이 나를 변화시키는 이유는 그것이 나를 낮추어 교만과 이기심에서 벗어나게 하고, 동시에 나를 인정해 열등감과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랑 덕분에 나는 죄를 미워한다. 내 죄 때문에 그분이 죽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랑 덕분에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분이 나를 해방시키려고 나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이토록 변화시키는 것은 없다. 내가 이렇게 사랑받는 존재이니 열등감이 사라지고, 은혜로만 구원받은 죄인이니 우월감도 사라진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부르짖음을 이해하면 그것이 바로 개인의 변화를 낳는 열쇠가 된다. 아울러 그것은 인간의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위대한 열쇠이기도 하다.”

    226p. “자기 연민은 회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아도취이며, 그것이 바로 죄의 본질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율법만 어긴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그분을 욕되고 슬프게 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만 변화가 시작된다.”

    230p. “‘자복하고’로 옮겨진 히브리어 ‘야다’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따라서 죄의 자백은 단지 이실직고나 “저는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라는 추상적인 말이 아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이 순간부터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270p. “그때부터 내게서 자비롭고 너그러운 생각이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가 여든 해를 살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좋은 감정과 행동을 미리 비축해 둘 수는 없고 날마다 하나님에게서 새롭게 길어 올릴 수만 있다는 것이다.”

    286p.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장 14-21절”

    306p.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시편 130편 4절”

    311p. “그래서 용서는 느껴지기 이전에 베푸는 것이다. 용서란 당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하면서 앞의 세 가지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고, 가해자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약속이다. 죗값을 당신이 부담해야 하므로 용서가 심히 어렵고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용서하면 당신의 성품이 깊어지고, 상대에게 거리낌 없이 말하며 도울 수 있고, 원한 대신 사랑과 평안을 얻는다.”

    314p. “그런데 용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처럼 정의도 존중해야 한다.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눅17:3). 하나님이 정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정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용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원한을 버리고 참으면서, 가해자가 회개하지 않을 때조차 용서의 자세를 취하도록 부름받았다. 그렇다고 죄의 끔찍한 해악을 대충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 중심의 열정으로 정의를 추구하고 그분의 영광을 중시해야 한다.””

    320p. “부딪치는 것이 두려워서 사랑하는 대상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한다면, 결국 이는 참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으려는 이기적인 욕망이다. 겁쟁이는 늘 이기적이어서 상대의 필요보다는 자신의 필요를 앞세운다. ‘그 사람에게 계속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리라.’ 이것은 절대 참사랑이 아니다. 상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서 얻는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다. 참사랑은 기꺼이 잘못을 지적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도울 기회라면 당분간 그의 사랑을 ‘잃을’ 것 까지도 각오한다.”

    나는 이번 책을 보며 2가지 생각을 했는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오! 팀켈러 목사님! 이 분의 책을 받아볼 수 있다니 너무 기쁘다.’ 와 동시에 ‘비교적 사람때문에 분노하지 않는 편인 내게 용서는 나와 거리가 좀 먼 단어이지 않나? ‘였다. 그러나 책을 읽고나서 내가 용서, 그리고 사람에게 화내지 않았던 이유는 그저 내가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기대가 없기에 실망도 없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흔히들 사랑의 반댓말이 곧 무관심이라고 한다. 사랑하라는 큰 계명을 어기고 있으면서 나는 용서에서 자유롭다고 착각하고, 교만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 결과 이번 책만큼 읽는 족족 포스트잇이 달렸던 책은 올해 이 책만이 유일했다. 한 해를 넘기기 전에 내가 그동안 오르지 못하고 쳐다보기만 했던 사랑의 산을 믿음으로 올라가야겠다는 결단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나는 성향상 다른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나 부탁하는 말을 잘 못한다. 그런대로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감수하며 살고 있었는데, 이번에 책 속에서 누군가의 반복되는 죄를 ‘옳은 때에’, ‘겸손과 온유한 방법으로’, 지적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돕는 것마저 용서의 일환이며, 공동체의 일임을 배웠을 때 누군가 머리를 한 대 치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 책임을 ‘그 사람을 사랑하기때문에~’라는 이유로 유기하는 것은 그 사람을 참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나, 또는 그 사람이 내게 주는 사랑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 역시 나의 정곡을 찔렀다.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화목함과 동시에 누군가 반복되는 죄를 짓는다면 그에게 직언할 수 있는 용기와 깨어있음을 가져야한다니.
    이 어려운 그리스도인의 길을 나야말로 먼저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지혜를 구하며 걸어갈 수 있기를 구해본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은 후 게시하는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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