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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책추천]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
    그믐🌚 독후감/그믐🌚 책 2020. 6. 21. 16:00

    이 책을 들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그거 재밌어" 한 소리씩은 꼭 들었던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을 가지고 왔습니다!




    저번 우리가 먼저 가볼게요를 시작으로 sf소설의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특이했던 것은 김초엽 작가님의 이력입니다.

    김초엽 작가님은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심지어 동대학원의 석사까지 이수하셨습니다.

    저도 대학원을 다니지만, 이과쪽 대학원은 쉽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

    이과쪽 재능뿐 아니라 창의력과 표현력도 너무 좋아서 부럽더라구요.


    오늘도 제가 흥미롭게 읽고 밑줄 친 부분을 함께 나눌건데,

    온전히 책의 모든 것을 즐기기 위해 책을 직접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스포일러가 잔뜩 들어갈 예정입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50p. "그건 또 하나의 놀라운 이야기였어. 올리브가 지구로 돌아갔다는 사실은 그날 이후에도 한참이나 남아서 내 마음을 자꾸 건드렸어. 나는 올리브가 마을로 돌아온 이유를, 그리고 다시 지구로 내려간 이유를 계속해서 상상했어. 문지기는 내 추측에 확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럴듯한 이야기구나"라고 말해주었지.

    문지기는 나에게 올리브가 델피의 옆에 영원히 잠들었다고 알려주었어. 지구에 가면 그 무덤 앞에 꽃을 놓아달라고도 말했지. 지구로 다시 내려간 올리브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관한 기록은 아주 적어. 하지만 문지기가 말해주었어. 그녀의 묘비는 보고타에 있는데, 이렇게 쓰여 있어.

    '델피의 올리브. 분리주의에 맞서는 삶을 살다.

    그녀의 사랑은 여기에 잠들고 결실은 후에 올 것이다.'

    올리브는 델피와 함께 지구에 남았어. 그리고 델피와 분리주의에 저항했지. 그녀의 어머니, 릴리가 지구에 남긴 흔적을 조금이라도 바꾸어보려고 애썼던 거야."


    54p. "떠나겠다고 대답할 때 그는 내가 보았던 그의 수많은 불행의 얼굴들 중 가장 나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거야."


    불공평과 부정의에 대해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대항하는 것보다 쉬울 지도 모른다.

    거기에다 그 부정에 의해 내가 의도했든 안했든 내가 이득을 얻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릴리는 사랑하는 올리브를 위해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버렸다.

    곧, 릴리의 입장에서는 유토피아겠지.

    그렇다해서 차별이 있는 세상이 사라진 건 아니다.

    차별이 있는 세상은 그대로 두고, 그냥 우리들만의 세상을 만든 것이다.

    이 때 나는 '아! 유토피아가 도래했다!' 고 말할 수 있는가?


    더군다나 거기서 끝이 아니다.

    사람들은 순례의 길을 떠나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내 사랑하는 사람과 그가 살고 있는 세계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가?

    그 세계가 곧 내 세계다.

    결국 내 세상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사랑은 행동을 이끌어낸다.

    그러니,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내가 그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단 이야기가 되겠지.


    독서모임에서 만약 내가 기득권자였다면, 나는 어느 편에 서겠는가라는 주제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대개 침묵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하나를 더 질문했다면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답했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세상에서 나는 내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는가?

    물론 우선순위의 문제겠지만, 내게 아직 사랑은 위대한 것이므로.

    나였다면, YES 다.


    <스펙트럼>

    95p. "루이와 할머니의 관계는 재현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 탈출 때 할머니가 협곡에서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한 뭉치의 종이뿐이었다. 할머니의 말대로 종이 위의 색채들은 마치 누군가 수백 종의 물감을 흩뿌려놓은 것처럼 다채로웠다. 

    "이건 루이가 나를 기록하고 관찰한 일기였어. 일종의 연구노트라고 할까. 내가 그들을 관찰하고 탐색한 것처럼 루이에게도 나는 연구대상이었던 셈이지. 어쩌면 그들은 내가 아주 먼 곳에서 온, 도구가 없어 무력한 학자임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할머니는 나에게 루이가 쓴 기록의 내용을 읽어주셨다. 지구에 돌아온 이후로 할머니는 여생을 색채 언어의 해석에만 몰두했다. 내용의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시간을 들여가며 알아낼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평범한 관찰 기록이었다. 그러나 그중 잊히지 않는 한 문장만큼은 지금도 떠오른다. 

    "이렇게 쓰여 있구나."

    할머니는 그 부분을 읽을 때면 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미소지었던 단편은 스펙트럼이었다.

    말도 안통하고, 심지어 문화도, 종도 다른 상황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김초엽 작가만의 답변이다.

    나는 이상을 좋아하는 몽상가이다.

    할 수 없겠지만, 할 수 있다면 모두가 모두를 이해하는 그 날이 왔음 좋겠다.

    적어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손짓, 발짓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서로를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리지 않을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82p. "우리는 점점 저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관내분실>

    239p.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는 흔히 애증이 얽힌 사이로 표현된다. 딸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삶을 재현하기를 거부하는 딸.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앓는 딸과 딸에 대한 애정을 그릇된 방향으로 표현하는 엄마. 여성으로 사는 삶을 공유하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다른 세대를 살아야 하는 모녀 사이에는 다른 관계에는 없는 묘한 감정이 있다. 대개는 그렇다. 한때는, 지민도 엄마와 자신 사이에 그런 애착과 복잡한 감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66p. "스무 살의 엄마, 세계 한가운데에 있었을 엄마,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이었을 엄마. 인덱스를 가진 엄마. 쏟아지는 조명 속에서 춤을 추고, 선과 선 사이에 존재하는, 이름과 목소리와 형상을 가진 엄마.

    지민은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지민을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도 아이를 가져서 두려웠을까. 그렇지만 사랑하겠다고 결심했을까. 그렇게 지민 엄마라는 이름을 얻은 엄마. 원래의 이름을 잃어버린 엄마. 세계 속에서 분실된 엄마. 그러나 한때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고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이 세계에 존재했을 김은하 씨. 지민은 본 적 없는 그녀의 과거를 이제야 상상할 수 있었다.

    그녀를 용서하거나 그녀에게 용서를 구할 생각은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 한때 그녀가 누구였건, 지민과 관계 맺었던 은하는 지민에게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준 적 없는 형편없는 엄마였다. 살아있는 동안 너무 많은 상처를 주고 받았다. 

    하지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엄마와 딸이라는 소재는, 곧 내 삶의 일부이기에 그런지 항상 내 눈물버튼이다.

    엄마의 인덱스를 검색하기 위한 물품으로 지민을 가졌을 때 은하가 썼던 기록이었다면, 나는 아 그저 그런 모성애를 부각시키기 위한 소설이구나 싶었을 것이다.(물론 그렇더라도 펑펑 울었겠지만)


    그러나 김초엽 작가님은 은하가 젊은 시절 몸담아 만들었던 책을 그 키워드로 잡는다.

    그리고 지민 엄마라는 이름 사이 가려졌던 은하의 청춘을 조명한다.

    은하가 지민을 키운 방식이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잘했다 이런 식으로 덮어주는 것도 아니다.

    잘못은 잘못이다.

    그러나 마지막 지민의 말마따나, 지민은 엄마이기 전에 은하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297p. "어떤 사람들은 재경이 인류를 대표하기에 불충분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어떤 사람들은 재경이 인류의 소외된 사람들을 대표하여 우주로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경은 과소대표되면서 동시에 과대대표되었다."


    308p. "재경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사람들은 재경을 닮은 다른 약한 사람들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이래서 결함이 있는 존재를 중요한 자리에 올리면 안 된다고, 표준인간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비난들은 분명히 재경의 잘못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의 실패는 그가 속한 집단 전부의 실패가 되는데, 어떤 사람의 실패는 그렇지 않다."


    재경은 동양인이며, 미혼모였다.

    약자를 욕하기는 쉽다.

    나는 이 소설에서 재경도, 가윤도 불성실하다 말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재경이 참여한 프로젝트가 어마어마한 세금을 들였다는 점에서 국민으로써 화가 나는 점은 이해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참여했고, 그 선발 과정에서 문제 역시 없었다.

    결과적으로 로켓은 터졌고, 그가 거기 탔다 해서 프로젝트의 성과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나는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재경을 미워할 수 없었다.


    <해설 : 아름다운 존재들의 제자리를 찾아서>

    329p. "진정한 유토피아란 신체적인 결함이 말끔하게 소거된 세상도, 그렇다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을 격리해놓은 세상도 아닐지 모른다고. 오히려 장애와 더불어 차별을, 사랑과 더불어 배제를, 완벽함과 더불어 고통을 함께 붙잡고 고민하는 세상일지 모른다고. 어쩌면 폐기해야 할 것은 소수자들의 신체적 결함이나 질병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규정되는 정상성 개념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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