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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책추천] < 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 >
    그믐🌚 독후감/그믐🌚 책 2022. 6. 7. 19:15

    말이 칼이 될 때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80p. “이것은 혐오표현이 소수자들이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존의 조건’을 파괴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혐오표현의 해악을 치밀하게 논증한 제러미 월드론Jeremy Waldron은 혐오표현이 한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의 존엄한 삶을 파괴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구성원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공공선public good’을 붕괴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혐오표현 규제가 “모욕, 불쾌감, 상처를 주는 말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포용의 공공선과 정의의 기초에 관한 상호 확신의 공공선”을 지킨다는 점에 주목한다. 월드론이 말하는 공공선은 사회의 각 구성원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존의 조건을 말한다. 각 구성원들은 자신의 속성이 무엇이든 적대, 배제, 차별, 폭력을 당하지 않고 여러 구성원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공존의 조건하에서 모든 구성원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정상적인 자격”, 즉 존엄한 존재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고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는데, 혐오표현은 이러한 “포용의 공공선”을 파괴하는 것이다.”

    83p.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그것을 내뱉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옆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는 순간 얘기가 달라진다. “어라, 저렇게 말해도 괜찮네.” 한 사람, 두 사람 거침없이 혐오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더욱 강도 높게 말하는 것이 인기를 끌게 되어 혐오표현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면서 혐오표현은 점차 확대, 강화되고 활개를 치게 된다.”

    88p. “하지만 혐오표현의 문제에서 저자의 의도는 (그를 형사처벌할 것이 아니라면)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다. 나쁜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나쁜 효과를 낳고 있다면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중국 동포들에게 영화를 영화로 봐달라고 요구하기 이전에 그들이 영화를 영화로만 볼 수 없게 된 사정을 헤아려야 한다. 영화와 같은 예술에서 조롱이나 희화화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 집단이 사회적 강자나 권력자가 아닌 소수자일 때는 얘기가 다르다. 그 부정적 효과를 충분히 고려하고 성찰하는 것은 예술의 영역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윤리다.”

    96p. “그렇다면 왜 증오범죄를 특별히 이슈화하는 것일까? 혐오표현과는 달리 증오범죄는 증오범죄로 분류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처벌하는 범죄인데도 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증오범죄의 해악이 중대하기 때문이다. 증오범죄는 피해자 집단에게 ‘너희들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피해자 집단이 평등한 사회 구성원이 아님을 선언하는 것이며, 차별과 배제를 공공연하게 예고하는 것이다. 예컨대 성소수자 환영 현수막을 훼손한 것은 ‘이곳은 성소수자가 평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다. 그렇게 직접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현수막 훼손이라는 ‘범죄’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증오범죄가 발생하면 그 피해자들은 ‘집단적으로’ 피해를 공유한다. 자신도 언제든 피해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극심한 공포감을 느끼고 위축된다. 혐오표현이나 증오범죄의 파급력은 상당히 유사하다.”

    150p. “표현의 자유는 원래 ‘소수자’의 권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수자나 강자는 자유자재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소수자에게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 가치다. 생존권, 평등권, 참정권, 노동권 등 모든 권리의 실현을 위해 소수자는 자신의 권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다른 권리의 실현을 위한 전제조건인 것이다. 그래서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 총량이 증가하는 것은 언제든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혐오표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소수자의 관점에서도 유리한 선택지일 수 있다.”

    159p. “형사범죄화로 인해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에너지가 처벌에만 집중된다는 문제도 있다. ‘합법’이라고 인정하면 사회는 그것을 ‘문제없음’으로 받아들이고 문제 해결을 위한 추가적인 노력을 회피하곤 한다. 반면, ‘불법’으로 판결하여 처벌에 성공하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착시현상이 생기고 국가는 자기 역할을 다했다는 면죄부를 얻어 더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등한시할 수 있다.”

    197p. “증오범죄는 ‘진공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상 집단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의 역사, 그리고 그들을 차별하고 적대시하는 환경 속에서 발발하는 것이다. 한국전쟁과 분단을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는 이념, 사상적 차이에 따른 증오와 편견이 특별히 문제가 되어왔고, 그래서 종북이나 좌빨 운운하는 것도 일종의 혐오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다. 실제로 정치적 반대파들에게 ‘종북 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여 몰아세우는 것은 아주 유용한 공격 수단이다.”

    213p. “미러링을 절대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여러 운동 방식 중 하나일 뿐이고, 역사적 소임을 다하고 사라질 수도 있다. 여성들의 저항이 중요한 것이지, 미러링이라는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의 방식이 ‘지속 가능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미러링이 ‘잠정적 동일시’로서의 패러디일 때만 사회비판 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거나 집단으로서의 남성이 아닌 성소수자 등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지적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222p. “미국의 페미니스트 철학자 버틀러는 이러한 대항표현을 언어철학적으로 정당화하기도 했다. 혐오표현이 어떤 의도로 발화되었든 발화의 ‘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발화되는 순간 그 의미는 화자의 통제를 벗어나 과거, 현재, 미래의 맥락에 놓이게 되면서 끊임없이 그 의미를 다시 부여받게 된다. 설사 소수자를 차별하려는 의도로 발화된 혐오표현이라 할지라도 발화자와 청자가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반박을 하는 가운데 그 의미가 재창조되고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면서 발화자의 의도에 담긴 최초의 ‘해악’은 차후에 스스로 치유될 수도 있는 것이다. 버틀러의 이러한 입장은 대항표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혐오표현의 문제를 법을 통한 금지, 처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다시 맞받아쳐서 그 의미를 전복시키고 다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기독교인으로서 혐오표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인지함과 동시에 그래서 더 자세히 알고 조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의도와 또 다르게 내가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될 수 있고, 나 역시 온전하지 않은 사람임을 받아들여가는 과정 중에 있다. 아무리 공부해도 100퍼센트 완전해질 순 없겠지만 평생을 노력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책을 읽으며, 차별금지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 수번의 발의와 그 반대의 역풍 속에서 사회 구성원에서 제외되어진 소수자들을, 그리고 그들의 삶들을 조용히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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