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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책추천] <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그믐🌚 독후감/그믐🌚 책 2022. 6. 7. 19:09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13p. “그렇게 지지부진한 시간을 보내다가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았습니다.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낸 후, 밤늦은 시간 이렇게 4월 16일을 보내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다가 갑자기 어떤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2016년 4월 세월호 생존학생과 참사로 세상을 떠난 학생들의 형제자매가 증언을 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때 참사로 오빠를 잃은 한 여학생이 소극장에서 관객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 저희 오빠가 죽은 거잖아요. 여러분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꼭 용기를 내주세요.”
32p. “고통은 개별 생명체가 느끼는 감각이기에 한 인간이 말하고 표현하지 못한 상처는 타인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말할수록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생존장병들은 누구에게도 그 이야기를 터놓지 못한 채, 자신의 고통을 몸속 깊이 욱여넣은 채 지내고 있었습니다. 생존장병들은 그렇게 고립되어 있었고, 생계를 위해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서 계속해서 ‘괜찮은 척 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하지 못한 트라우마의 기억은 종종 예고 없이 증상으로 나타났습니다.”
55p. “계속 우리한테 무언가를 요구했다. 결과물을 내야 하는데 계속 똑같은 말이 반복되니까, 자기도 답답하고 조사받는 우리도 답답하고. 뭘 원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유족들은 30분 간격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쭉 궁금해했다. 지금 생각하면 가족들 입장에서는 너무 답답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 당시에는 많이 좀 힘들었다. 더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계속 내놓으라고 하니까. (생존장병 A)”
60p. “주디스 허먼은 트라우마 생존자마다 다른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 뒤 그 치료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이야기합니다.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안정입니다. 폭력과 죽음을 직접 맞닥뜨리고 생명이 위협받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에게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주고 또 느끼게 해주는 것이지요. 삶의 통제권을 빼앗겼던 경험을 한 생존자에게 더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안정의 단계는 치유를 위해 필수적입니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다음 단계인 트라우마의 기억을 다시 탐색하고, 최종적으로 그 기억을 현재 삶 속으로 통합시켜 일상으로 복귀하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63p. “많은 장병에게 군대는 자기 고통을 편히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모두가 고생하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데, 자신만 아프다는 말을 하기 어려우니까요. 특히 그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어려움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수전 손택은 [에이즈와 그 은유]에서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하한다는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생존장병 중 71.4%가 ‘신체적 외상이 없어서 군의관이 내 고통을 엄살로 생각한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라고 말했으며, 76.2%가 ‘신체적 외상이 없어서 동료가 내 고통을 엄살로 생각한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병들 중 68.2%는 ‘정신과에 가면 관심병사로 찍힐 것 같아서 진료를 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87p. “심리학자들은 정신 질환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세 가지 인식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그들이 맡은 일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이자 온전하지 못한 인간이라는 고정관념이며, 둘째는 그들은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르는 위험한 존재이므로 사회적 활동으로부터 배제하고 격리해야 한다는 편견이고, 셋째는 그들이 어린아이처럼 순진하며 정신적으로 나약해 질병에 걸렸으니 돌봄이 필요하다는 시혜적 태도입니다.”
108p. “직업군인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했던 이들이 근무중 트라우마를 경험해 당장 직무상 필요한 일을 수행하기 어렵게 되었을 때 과연 그 사람을 전역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이는 그 결정이 윤리적으로 옳은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과연 그러한 조치가 강건한 군대를 꾸리는 과정에서 효과적인지 묻는 일이기도 합니다. 군인은 훈련과 전투 과정에서 조직의 명령에 따르고 또 전쟁 발발시 조직의 결정에 따라 자신의 삶을 희생할 것을 요구받는 직업입니다. 천안함 생존장병들은 주어진 지시에 따라 성실히 일하다 자신의 과실과 무관하게 트라우마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군대는 그 상처를 적극적으로 돌보는 대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며 결국 그들이 전역을 선택하도록 방치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지켜본 군인들에게 유사시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충성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요.”
119p. “그러나 피우진의 바람과 달리 2006년 11월 군인사법상 ‘양쪽 유방 절제’는 심신장애 2급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강제 퇴역 처분을 받습니다. 업무에 어떤 지장도 초래하지 않았지만 수술로 유방을 절제했다는 이유로 퇴역 처분을 받은 것입니다. 가지고 있을 때는 성희롱의 대상이 되었던 유방이, 암에 걸려 절제 수술을 받아 없어지자 퇴역 처분의 이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를 두고 피우진은 과거 암에 걸리면 사망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군인사법의 규정이 의학의 발전에 맞춰 수정되지 않은 까닭에 생겨난 문제라고 지적하지만, 저는 이와 함께 군대의 ‘능력 있는 몸’ 이데올로기가 소수자에게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151p.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된다는 일은 간단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피해자의 이미지에서 어긋나는 이들에게 마음을 내주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살아남은 이들은 피해자라기보다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재난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173p.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스템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시스템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을 때 훨씬 더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만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190p. “그 대답은 명확합니다. 역사는 후퇴할 수 있고 한국 사회는 더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연한 사고가 아닙니다. 2014년 4월 16일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와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처럼 한국 사회의 부패와 무능이 드러난 날이었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희생을 겪고도 그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바꾸지 못해 발생한 미래입니다. 언젠가 이글을 읽는 누군가의 삶을 앗아갈, 아직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또다른 참사의 과거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피해자를 향한 연민을 넘어서야 하고, 슬픔과 분노를 소비하는 행위를 넘어서야 합니다.”
234p. “그러나 군인과 소방공무원은 타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자리를 찾아가는 노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사고를 완전히 예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가장 위험한 자리에서 일하던 이들이 다쳤을 때, 그들을 지키는 것은 사회의 몫이어야 합니다. 2010년 차가운 서해 바다에서 트라우마를 겪고 지난 11년의 시간을 힘겹게 버텨낸 생존장병들에게 상이연금 지급과 국가유공자 등록은 한국 사회가 그들의 노동에 대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인 것입니다.”
258p. “그렇게 강요된 침묵으로 위장된 평화는 가장 약한 이를 또다시 피해자로 만듭니다. ‘언어’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그 사건’이 생존자의 몸속에서 여전히 진행중일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지요. 인터뷰를 하면 항상 “괜찮다, 견딜 수 있다”라고 답하던 세월호 생존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의 허벅지는 상처로 가득했습니다. 그 사건의 기억이 떠오르고 불안감이 올라올 때마다 볼펜으로 자신의 몸을 찌르거나 꼬집는 방식으로 견뎠던 것입니다.
트라우마 생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생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답해주고 그 고통을 비하하는 사람들에 맞서 함께 싸워주는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생존자의 몸속에서 고통의 에너지로 머물던 사건은 언어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 군인들에 대하여, 소방 공무원들에게 내가 무엇을 빚졌는지 되새겨볼 시간과 우리나라의 ‘남자다움’의 강박에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자신의 섬세한 감성을, 그리고 아픔을 외면해야 했는지를 볼 수 있었다.
최근 봤던 기사 댓글 중에 충격적이어서 기억에 남았던 댓글이 있었다. 몇달 전 길에서 시비 붙은 남성이 두 부부를 흉기로 공격한 사건이다. 이 때 남편분은 다치고, 아내분 두 분 다 끝내 사망하셨는데 댓글에서 오히려 ‘남자가 둘이나 있었는데 여자가 둘이나 죽은게 안타깝다’, ‘남편이 아내를 살피지 않고 자기만 도망갔다’는 둥 남편을 탓하는 글이 있어 충격이었다. 나도 그런 걸로 판단하고 싶지는 않지만 댓글 닉네임상 남자 이름이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놀랐다.
칼을 든, 그러니까 무장한 사람의 앞에서는 남녀 따질 것 없이 모두 무력한 것이 정상이다. 맨몸 격투나 무술에 능한 사람이라면 혹시나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그런 것도 아니겠지. 과연 그들이 말하는 ‘온전한 남성성’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서로를 ‘남성성’, ‘여성성’으로 가두는 이 감옥은 대체 어디서 누가 만들고, 우리를 가두는걸까?
다시 글로 돌아가서, 책을 읽으며 천안함 사건에 대해 제대로 몰랐던 점에 대해서 반성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도 제대로 못하고 고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살지 않고, 모르는 척 해왔던 일원 중 하나가 나였음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래의 피해자도 이길테지만, 지나버린 피해자들도 역시 늦었겠지만 끝내는 이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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