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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책추천] < 다정소감, 김혼비 >
    그믐🌚 독후감/그믐🌚 책 2022. 7. 7. 16:56

    다정소감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
    27p. “중년, 단체, 패키지 여행, 이 세 가지가 결합해서 빚어내는 어떤 편견. ‘여행부심’과 ‘예술부심’이 이중으로 빚어내는 어떤 오만. 거기에는 후세대에 비해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를 생활 밀착적으로 관람하는 문화를 경험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예술에 관심을 갖고 취향이라는 걸 만들어가기 어려운 조건이었으며, 지금처럼 여행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젊은 시절을 보냈고, 그래서 여행을 가기까지 거쳐야 하는 복잡한 절차들이 쌓은 심리적 장벽을 패키지여행의 형태로 넘어보려는 세대에 대한 아무런 이해도 없었다(중년 안에서도 경험치와 감수성이 천차만별일 거라는 고려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미술관에 가는 건 ‘경험’을 쌓는 걸로 봐주지만, 그래서 당장은 지루해하고 별 감흥을 느끼지도 못해도 그런 경험들 끝에 돌아올 ‘무언가’를 기다려주지만 5,60대 중년이, 이제 와서, 떼를 지어,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는 건, 단지 패키지여행 일정에 포함되어 있으니 별생각 없이, 유명하다고 하니까, 그 앞에서 사진이나 찍고 싶어서,라고 쉽게 단정 지었다. 그들에게는 쌓을 ‘경험’도 미래의 ‘무언가’도 없을 거라는 듯이.”

    47p. “무엇보다 공포를 버텨내는 힘이 달라졌다. 그라운드 위에서나 그라운드 밖에서나 마찬가지였다. 물리적 충돌을 대면하는 수밖에 없다면 여차하면 나도 육탄 방어할 거야, 때릴 수 있다면 나도 같이 때릴 거야, 라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공포가 조금 줄었다. 진짜로 그럴 수 있든 없든(아마도 실제 상황이 닥치면 못 그럴 확률이 높아 보이지만), 그런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았을 때는, 백지처럼 새하얘진 머리와 함께 온몸이 얼어붙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당할 수 있는 물리적 폭력이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른다는 점도 공포의 요인이었다. 그럴때면 나도 모르게 상상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고통을 떠올리며 더 심하게 얼어붙곤 했다. 그런데 그라운드에서 몸싸움을 하면서 ‘맞는’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고통의 느낌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고, 그렇게 고통이 구체성을 띠고 다가오니 그게 또 두려움을 한결 줄였다. 적어도 나를 집어삼킬 정도로 커지지는 않았다. 이것만도 굉장한 발전이었다. 우리는 보통 폭력에 제압당하기 전에 폭력에 대한 두려움에 먼저 제압당하니까.”

    72p. “사람이 무엇인가에 절실해지면 심지어 맞춤법 책에서까지 위로와 자기합리화의 소스를 기어이 찾아낸다는 교훈을 남긴 이 일화와 정도만 다를 뿐, 소소하게라도 독서라는 행위 안에서 책과 내가 주고받는 상호작용에는 이런 식의 자기 편향성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독서가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이유겠지만, 독서량이 결코 지성의 척도가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소문난 다독가 중에도 왜곡되고 편협한 시선을 지닌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면 이를 일컫는 단어도 표준어로 등재되어야 한다. ‘쓸책없다’ 정도?).”

    73p. “충고를 그대로 따르지 않더라도 고민의 선택지를 늘려주는 타인의 앞선 경험들은 적어도 내게는 크고 작은 도움이 된다.”

    102p. “그날 나는 그동안 내가 기본 소양이라고 여겨왔던 것들, 사회가 기본 소양이라고 설정해놓은 것을 무비판적으로 가져다 써왔던 일들에 관해 생각했다. 그런 태도가 때로 무심코 지워버리는 것에 관해서도 생각했다. 이를테면 많은 사람이 기본 중에서도 기본 예절이라는 미명으로 ‘TPO에 맞는 옷’같은 걸 상정해놓고 사람의 기본을 판단한다. 그런데 TPO에 맞는 옷이란 대체 누가 정한걸까? 모르긴 해도 TPO에 맞는 옷을 이미 갖고 있거나 구입할 여건이 되는 사람들이 정했을 것이다. 적어도 정장을 구비할 여력이 없어 누군가의 결혼식 때마다 전화를 돌려 정장 빌리기에 급급한 사람이 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03p. “하지만 때로 이 ‘기본’이라는 지나치게 확고한 단어는, ‘기본’ 바깥 사람들의 저마다 다른 맥락과 상황을 쉽게 지우기도 한다. A와 나는 성장한 과정도, 몰두하는 대상도 다른데, A의 맞춤법을 보며 나는 “왜 맞춤법을 잘 모를까?”를 따져볼 생각조차 안 했다. 왜? 기본이니까. 기본이라는 것은 이유 불문하고 어느 정도 당연히 갖춰야 하는 거니까. 기본 소양이라는 게 때 되면 어딘가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나이를 먹듯 세월 따라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닌데, 그것을 배우고 갖추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와 환경이 확보되어야 하는 건데, 그런 확보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기본’으로서 누군가를 판단할 때 배제되기 쉬운 불리한 어떤 입장들에 대해 잊고 있었다. 설사 같은 조건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적성과 서향, 강점과 약점은 얼마나 다른가.”

    126p. “의식적인 노력을 다한다 하더라도 글은 모든 상황과 입장을 전부 담지는 못한다. 어느 한곳에서는 반드시 누수가 일어나 어떤 존재들은 빠져나가고 배제되고 소외되기 마련이다. 그 안에서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표현’을 계속 고민하고 다듬는 일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D들이 삐쭉댈 만한 말을 최대한 쓰지 않는 것. 누군가 내 글을 읽다가 외로워지는 일을 최대한 줄이는 것. D가 슬프면 나도 무척 슬플 것이다. D가 아프면 나도 무척 아플 것이다. 그것에 비하면 써왔던 말들을 버리고 벼리는 건 아무거도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136p. “과속방지턱처럼 존재하는 그것들로 인해 나는 관계 앞에서 무척이나 머뭇대는 어른이 되었다. 관심이란 달짝지근한 음료수 같아서 한 모금 마시면 없던 갈증도 생긴다는 것을, 함께 마실 충분한 물이 없다면 건네지도 마시지도 않는 편이 좋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한다. 순간의 기분으로 문 너머 외로운 누군가에게 다가가려다가도, 가장 따뜻한 방식으로 결국에는 가장 차가웠던 그때의 내가 떠올라 발을 멈춘다. 끝까지 내밀 손이 아닐 것 같으면 이내 거둔다. 항상성이 없는 섣부른 호의가 만들어내는 깨지기 쉬운 것들이 두렵다. 그래서 늘 머뭇댄다. ‘그럼에도’ 발을 디뎌야 할 때와 ‘역시’ 디디지 말아야 할 때 사이에서. 이 사이 어딘가에서 잘못 디딘 발자국들 사이에서.”

    142p. “그러고 나니 더욱더 드라마 등에서 챙김, 특히 ‘엄마의 챙김’을 받지 못해 쓸쓸하게’만’ 그려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걸 보면서 엄마를 탓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걸 보고는 아이에게 미안해할 엄마들이 떠오를 때마다, 항변하고 싶었다. 전혀 쓸쓸하지 않았던 아이들 역시 많았다고. 우산 속 자리도 아늑했겠지만 우산 밖 빈자리가 우쭐했던 아이들도 분명 있었다고. 그 빈자리를 스스로 채워가며 커간 아이들이 갖게 되는, 산성비도 부식시키지 못할 단단한 마음 같은 게 있다고. 설령 그렇지 않았던들 그건 엄마들만 미안해할 일이 절대 아니라고. 당시에는 어려서 사회가 ‘엄마’에게 소급해서 씌우는 책임의 무게를 잘 몰랐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어른들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런 어른들이 미디어에 ‘나쁜 엄마들’을 만들어내고 우리의 존재를 지워버렸다는 건 잘 몰랐다. 그래서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그래서 한 번쯤 꼭 말하고 싶었다.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그 시절을 우리가 어떻게 통과했는지에 대해서. 그런 우리들도 있었다고. 분명 있었다고.”

    219p. “그러니까, 인생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 중 내 마음을 가장 강력하게 붙드는 건 결국 다정한 패턴, 다정이 나를 구원하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글을 쓰려고만 하면 앞다투어 튀어나오는 바람에 몇 개만 골라내야 할 정도로. 글을 쓸 때는 뻔하다면 뻔한 패턴에 어김없이 강타당하는 나의 확고한 일관성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지만, 어제는 노트에 모인 쓰지 않은 이야기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어쩐지 뭉클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상이 결코 당연하지 않았던 것처럼, 뻔하다면 뻔한 패턴의 이 이야기들은 결코 뻔하지 않았다. 하나하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유했다. 뻔한 다정이란 없었다.”

    220p. “주저앉고 싶은 순간마다 “내가 무능력했지 무기력하기까지 할까봐!”라고 덮어놓고 큰소리칠 수 있었던 것도 내 안에 새겨진 다정들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게 붙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패턴을 반복해서 얻게 되는 건 근육만이 아니었다. 다정한 패턴은 마음의 악력도 만든다. 그래서 책 제목을 ‘다정소감’이라고 붙여봤다. ‘다정다감’을 장난스레 비튼 느낌도 좋았지만, 결국 모든 글이 다정에 대한 소감이자, 다정에 대한 작은 감상이자, 다정들에서 얻은 작고 소중한 감정의 총합인 것 같아서. 내 인생에 나타나준 다정 패턴 디자이너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보낸다. 디자인에 워낙 재주가 없는 나에게 다정한 부분이 있다면 그건 다 그들의 다정을 되새기고 흉내 내며 얼기설기 패턴을 만들어간 덕분일 것이다.”

    다정은 체력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그래서 체력을 잘 챙겨야지 다짐하곤 했지만, 어떤 병은 소리소문없이 내 방문을 두드려서 정신 차려보니 자기 멋대로 내 침대에 함께 누워 있었다. 내 새로운 동반자가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게 또 체력이어서, 올해는 유독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을 제대로 못 쓴 해이기도 하다. (남은 절반의 시간동안 다시 심기일전해서 평균은 맞춰야지!)
    그런데 또 근래 1-2주는 미처 챙기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과 어쩌다 연락이 닿아 서로의 부서진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누군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고, 누군가는 오히려 너무 지쳐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시인했으며,누군가는 직접적으로 SOS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나의 인간적인 다정함만으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그 텅빈 마음 속을 보며 죽기까지 당신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사랑이 그 마음을 가득 채우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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