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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책추천] <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 천종호 >그믐🌚 독후감/그믐🌚 책 2022. 6. 29. 16:13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
9p. “저는 자주 묻습니다. “소년범의 죄는 누구의 죄인가요?” 많은 경우, 소년의 비행은 소년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입니다. 소년재판을 담당하면서 누구도 겪어서는 안 되는 방임과 학대의 그늘 아래 놓인 아이들을 수없이 만났습니다. 비행이라는 거푸집을 벗기고 나면 삶의 부조리와 폭력 앞에 아무런 보호막 없이 내던져진 아이들의 유약함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이 아이들의 문제가 무엇에서 생겨났는지,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그 배경과 맥락을 누군가는 헤아려야 합니다.”
23p. “물론 가난하다고 해서, 또 부모가 없다고 해서 모두 비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돌봐 줄 어른이 곁에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비행소년 주위에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친구들이 많습니다. 보호해 줄 어른이 없고, 좋은 행동이 되어 줄 친구들도 적은 상태에서 아이가 올곧게 성장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은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존재입니다. 아직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힘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주위 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처한 환경에 대한 이해나 배려 없이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또 골칫덩이라는 이유로 그 많은 아이들이 공공연하게 버림받고 있는 현실을 직접 눈 앞에서 목격하는 일은 늘 가슴이 쓰라립니다.”
32p. “흔히 산불은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고 말을 합니다. 초기에 발견해서 불씨가 더 번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면 큰 화재로 번지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비행소년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실수나 잘못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실수나 잘못도 용인하지 않고 일찌감치 사회적 낙인을 찍어 버리면 더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쉽습니다. 사람이 바뀌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이미 ‘범죄자’라는 꼬리표가 달린 상태에서는 희망을 품기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반대로 적절한 교육을 통해 비행의 문제점을 알려 주고, 아이가 반성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공감과 지지를 보내주면 실수를 발판 삼아 성장할 수 있습니다.”
46p.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이 가진 힘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굳이 대문호의 문장을 빌지 않더라도 어린 시절의 가족과 함께한 아름다운 추억이 평생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 준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겠지요. 아버지가 엄마 몰래 건네주던 용돈, 엄마가 목욕 후에 발라 주던 향긋한 로션 냄새, 첫 가족여행 등 사소하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은 영혼의 화석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우리를 선한 길로 안내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평범하고 따스한 기억조차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모를 일찍 여의거나, 있어도 아무런 보호막이 되어 주지 못해 길 위에서 떠도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55p. “그런데 사람들은 힘을 모으기보다 나누고 갈라치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 문제아와 모범생, 위기 청소년과 일반 청소년 등 참 많이도 나누고 벌려 놓았습니다. 어쩌면 이런 분별은 삶의 질곡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번이라도 삶의 질곡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이것과 저것 사이의 결계가 얼마나 얇고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 알 테니까요.”
79p. “스무 살도 채 안 된 아이들이 왜 이리도 자꾸만 잔혹한 범죄를 저지를까요? 아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살아남기 바빠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공감은 사람과 관계 속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하루 24시간 생계에 쫓기는 부모 밑에서 혼자 자란 아이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잘 알지 못합니다. 학대를 당하며 성장한 아이들은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성품을 함양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학교는 가정에서 배운 사회성, 관계능력을 확장하고 적용하는 곳인데 가정에서 아무것도 배우질 못했으니 학교생활도 순탄할 리 없습니다.”
81p. “학교에서도 밀려나고 사회에서도 밀려난 아이들에게 남는 것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또래들뿐입니다. 결국 자기들끼리 무리 지어 다니며 그 관계라도 붙잡기 위해 애를 쓰지요. 하지만 그들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입니다. 그들의 말투와 행동은 매우 폭력적이고, 그로 인해 그들이 빚어내는 관계는 더욱 폭력적입니다. 아이들은 하나 남은 친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폭력을 서슴지 않고, 친구를 실망시키지 않으려 원조교제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비행소년 무리에서마저 외면당하고 싶지 않은 절박함과 외로움 끝에 나온 행동들입니다.”
129p. “그러나 드러난 사건 몇 개만으로 특정 집단을 겨냥해 이렇다 저렇다 비난하고, 이때다 싶은 마음으로 몰아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특히, 그것이 혐오를 동반한 비난일 때는 더욱 그렇지요. 부산여중생폭행사건이 터졌을 때, 소년범에 대해서도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소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여론을 지지하기에 앞서 좀 더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조직폭력배 4명이 한 시민에게 부산여중성폭행사건의 가해자들이 저지른 것과 똑같은 내용의 폭력을 저질렀다고 해 보겠습니다. 이 경우 그 조직폭력배들에 대해 사형이나 무기징역형을 선고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강연에 가서 수없이 질문을 해 보았지만, 그러한 폭력을 저지른 조직폭력밷르에 대해 선고되어야 할 형의 최고치는 징역 10년이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들에게 징역 5년형이 적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인들보다 더 관용을 받아야 하고, 조직폭력배보다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적다고 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 사형이나 무기징역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여론이 드높았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160p. “범죄 피해자들을 진정으로 돕는 길은 그것 외에도 범죄 피해자 구조에 관한 제도를 세밀하게 만들어 피해자들이 제도의 불비로 보호망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게 하는 한편, 제도가 미비한 경우 공동체 구성원이 나서서 아픔을 함께 나누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동반되어야 합니다. 부산여중생폭행사건이 터졌을 때, 대다수 시민은 가해자들의 엄벌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피해자의 가정 회복이나 학업 복귀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크게 헤아릴 수 있는 어른다운 어른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남과 같은 곳만 바라보며 분노를 표출하기보다는 남이 보지 못하는 곳을 살피고, 마음을 열고 작은 도움의 손길이라도 베푸는 참다운 어른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180p. “죄를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영원히 벌만 받게 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함께 살아야 합니다. 죄는 엄벌하되, 죗값을 치르고 나면 사회 구성원으로 되돌아가 어엿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무릇 죄는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도와야 재발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소외되고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을 품어 되돌리는 일을 누군가는 꼭 해야 하지 않을까요?”
책의 첫 부분을 하필 경전철에서 읽었는데 눈에서 홍수가 나서 마스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중반부에서는 나도 사람은 변한다는 걸 받아들였다고 했으면서도 소년범 뉴스가 나올 때마다 피해자에 대한 마땅한 지지와 관심보다 소년법에 대해 개정 촉구와 엄벌을 요구했던 사람들 중 하나로서 잔뜩 찔렸다.
책의 뒷부분에는 판사님께서 대안으로 제시하시는 그룹홈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나도 한때 그룹홈 운영에 대한 꿈을 꾸고 여기 저기서 이야기했던 사람으로서 잊고 있던 꿈과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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