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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책추천] < 새파란 돌봄, 조기현 >
    그믐🌚 독후감/그믐🌚 책 2022. 7. 26. 20:50

    새파란 돌봄
    : 가족, 돌봄, 국가의 기원에 관한 일곱 가지 대화
    11p. “지금까지 청소년기나 청년기에 아픈 가족을 돌보며 학업이나 취업을 준비하거나 생계를 꾸려야 하는 어려움을 설명할 마땅한 언어가 없었다. 효자, 효녀, 소년 소녀 가장 등 고통을 사적 영역에 가두거나 시혜적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마땅한 언어가 없는 고통은 소통도 쉽지 않고 이해도 어렵다. 고통을 더하는 고립감만 찾아든다. 나 혼자만 겪는 듯한 고통에 이름이 생긴다면 어떨까? 사회적으로 부르는 말이 생기면 적어도 고립감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15p. “청소년이나 청년이 하는 돌봄은 생산성을 빼앗기는 손실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돌봄 하는 사람을 저평가한 맥락을 반성해야 할까? 돌봄을 하지 않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아니면 돌봄 하는 삶이 손해 안 보고 불행하지 않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30p. “병원에서는 내가 이 사람하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모르잖아요. 제가 거기 간 이유는 아빠 핸드폰에 ‘첫째 딸’이라고 저장돼 있어서예요. ‘네가 가족이니까 무조건 해야 돼’라는 압박 때문에 아빠를 더 미워하게 된 것 같아요. 만약에 선택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가족과 인간의 모습은 다양한데, 제도는 너무 단순해요.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하겠지만, 기준이 단순하니까 내가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비정상’인 거 같은 느낌이에요.”

    43p. “‘가족’이라는 틀은 한국 사회가 개개인에게 성원 자격을 부여하는 핵심적인 틀이었다. 지난날 한국은 빠른 근대화를 목표로 삼아 돌진하면서 개개인을 보호하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틀 속에 개인을 구겨 넣고 그 가족이 개인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런 방식이 사회가 개개인을 직접 보호하는 쪽보다 자원이 덜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부작용이 심했다. 가족 안은 닫힌 공간으로 바뀌어 폭력의 온상지가 됐고, 가족 밖은 아무 보호막이 없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세계가 됐다. 가족이나 가구 단위에 기반한 제도들은 가족을 통하지 않으면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누군가의 ‘가족’이 아니라 온전한 ‘개인’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제도와 문화가 부재한 셈이다.”

    66p. “한부모 가정이라면 부모가 아플 때 자녀가 돌봄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 가정의 어른이 아프다는 말은 단지 아이가 돌봄을 받지 못하는 상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아이들이 직접 아픈 어른을 돌봤고, 돌봄을 맡은 어른을 보조하는 구실을 해왔다. 아이도 어른을 돌본다는 관점을 공유해야만 우리는 우리 곁에 있을지 모르는 영 케어러의 존재를 보게 된다.”

    73p. “우리는 아이가 돌봄의 ‘대상’일 뿐 아니라 돌봄의 ‘주체’일 수도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아이한테서 교육받을 권리와 놀 권리를 빼앗으려는 시도는 아니다. 오히려 돌봄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아이에게 교육과 놀이를 보장할 길을 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돌봄 서비스가 아무리 확대돼도 일상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돌봄 행위를 대체할 수는 없다. 아이들은 돌봄을 해왔고, 하고 있다. 앞으로 고령 인구가 늘어나고 출생률이 줄어들면서 노인을 돌보는 아이들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지금 영 케어러라는 호명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 케어러를 우리 사회의 성원으로 인정하고 영 케어러에게 무엇을 보장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78p. “돌봄 교육은 당위의 차원을 넘어선다. 누구나 삶에 마주하게 될 순간을 각자도생으로 두지 않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의무 교육 과정이 아니더라도 성장 과정에서 돌봄을 어떻게 배울 수 있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돌봄은 불행이나 억압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길’이 될 수 있다.”

    172p. “여기서 우리는 돌봄과 가사가 여성과 약자에게 떠넘겨지는 맥락을 살펴야 한다. 정치학자 조안 트론토는 이런 문제를 민주주의에 관련된 쟁점으로 파악했다. 돌봄 책임이 여성에게, 가난한 사람에게, 유색 인종에게, 이주 노동자에게 분배되는 현실은 불평등하고 비민주적이다. 이런 사람들은 돌봄을 수행하지만 사회의 모든 방면에서 취약한 조건에 있기 때문에 돌봄에 관한 공적 논의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남성들이나 높은 지위에 있거나 부유한 사람들은 돌봄을 하지 않는데도 돌봄에 관한 공적 논의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사회적이고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돌봄을 하지 않는 사람은 돌봄을 잘 받고 돌봄을 하는 사람은 돌봄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돌봄을 받으면서 돌봄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겨지는 ‘무임승차권’을 회수해야 한다고 트론토는 제안한다. 회수해야 하는 무임승차권은 모두 다섯 가지로, 보호형 무임승차권, 생산형 무임승차권, ‘나만의’무임승차권, 부트스트랩형 무임승차권, 자선형 무임승차권이다.”

    208p. “새파란 돌봄을 만들어갈 수 있는 생기를 느낀다. 진로 이행, 가족 돌봄, 생계 부양이 꼬이지 않고, 하고 싶은 모임과 가족 돌봄이 대립하지 않으며, 아픈 이를 무능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하지 않는 어떤 세계의 모습이 뚜렷해진다.”

    '영케어러'라는 신조어의 출몰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어디까지 준비되어 있나라는 걱정으로 시작해 여전히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구나라는 답으로 끝난 책.
    읽으면서 답답함이 몰려왔는데 실제 이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말그대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했을지 감히 상상도 해볼 수 없어서 속상했다.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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