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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독후감 ] [ 책추천 ] <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 마일리스 드 케랑갈 >
    그믐🌚 독후감/그믐🌚 책 2023. 2. 21. 20:46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180p. “마리안과 숀이 배를, 긴 선체를, 180미터짜리 선체를, 최소 3만 톤은 됨 직한 선체를 눈으로 쫓는다. 배가 나아간다. 현실 위를 미끄러지는 빨간 커튼(그 순간 두 사람이 생각하는 것, 그게 뭔지는 모른다. 아마도 그들은 시몽에 대해서, 태어나기 전에 그는 어디에 있었으며 앞으로는 어디에 있게 될까를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차츰차츰 사라지다가 또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세계, 만질 수 있는 세계, 절대적으로 이해 불능인 그 세계의 유일한 광경에 사로잡혀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물살을 쪼개며 나아가는 선수는 그들이 느끼는 고통의 강렬한 현재성을 확인해 준다.”

    200p. “세 사람이 이제 자리를 뜨려고 한다. 그런데 마리안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침대로 돌아간다. 그녀를 그 자리에서 꼼짝 못 하게 하는 것은 이제부터 하나의 물체처럼 그곳에 홀로 남게 된 시몽에게서 흘러나오는 고독이다. 그는 이제 인간의 몫을 벗어던진 것만 같다. 더는 공동체와 결부되지 않고 의도와 감정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지 않고 절대적 사물로 변해 떠돌고 있는 것만 같다. 시몽은 죽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그 말을 입에 올리고 나서 갑작스레 밀어닥친 공포에 숀을 찾으나 보이지 않는다. 급하게 복도로 달려 나간다. 완전히 탈진해 벽에 기댄 채 쭈그려 앉은 숀을 발견한다. 그 역시 시몽에게서 발산되는 고독에 노출되었고, 그 역시 이제는 그의 죽음을 확실히 믿는다. 그녀가 그의 앞에 쭈그리고 앉는다. 그의 턱 아래 두 손을 받쳐 얼굴을 들어올리려고 한다. 나가자. 가자. 여기를 떠나자(그녀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끝났어. 가자. 시몽은 이제 존재하지 않아).”

    
233p. “이 시간이 되니 유리문은 거울로 변했다. 겨울밤 연못 수면에 유령들의 모습이 비치듯 그 사람들의 모습이 거기에 비친다. 그 모습을 묘사하라고 한다면, 그 사람들의 겉가죽을 둘러쓴 허깨비 같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 표현의 상투성은 그 두 사람의 내면의 붕괴를 보여 주기보다는 바로 오늘 아침만 해도 그들이 어땠는지를, 그저 이 세상에 두 발 딛고 서 있는 한 남자와 한 여자였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차가운 불빛으로 덧칠한 바닥 위를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이제 이 두 사람은 몇 시간 전에 들어섰던 여정을 계속 밟아 나갈 것이며 더 이상 코르델리아나 지상의 다른 존재들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세계로부터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지고 완전히 벗어나서 다른 영역으로, 어쩌면 아이를 잃어버려 위로받을 길 없는 사람들이 잠시 한데 모여 꾸역꾸역 살아가는 그런 영역으로 옮겨 갔다는 것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법 했다.”

    243p. “암흑. 시몽의 심장이 모르는 사람의 육체 안에서 다시 뛰기 시작하면 쥘리에트에 대한 사랑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 심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그 모든 것들, 이 세상에서 첫날을 맞은 뒤로 서서히 켜를 지었을 감정들, 혹은 흥분이 솟구치거나 분노가 폭발하여 여기저기로 튀었을 감정들, 우정, 그리고 미움과 원한, 격정, 진중하고 다감한 성향은 어떻게 되는걸까? 파도가 다가올 때면 그의 심장을 세차게 파고들던 그 짜릿함은 어떻게 되는걸까? 그 충만한, 가득한, 터질 듯한 심장은, 그 <풀 하트>는 어떻게 되는 걸까?”

    250p. “공포가 그녀를 침대에 못 박고, 빠져나갈 구멍이라고는 찾을 길 없는 앞으로의 나날들에까지 스며든다(그건 죽음에 대한 공포이자 고통에 대한 공포, 수술에 대한 공포, 수술 후 치료에 대한 공포, 거부 반응이 와서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공포, 자신의 몸 안에 낯선 이의 몸이 들어온다는 것에 대한, 키메라가 된다는 것에 대한,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공포이다).

    308p, “시몽의 심장은 수도권으로 이동했고, 그의 간과 폐는 지방의 또 다른 지역들에 도착했다. 그것들은 다른 육신들을 향해 질주했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그녀의 아들의 단일성에서 살아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만의 특별한 기억과 이렇게 분산된 육체를 어떻게 결부시켜야 할까? 그의 존재, 이 세상에 비추어진 그의 모습, 그의 혼은 또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러한 질문들이 부글거리는 기포처럼 그녀 주위를 맴돈다. 그러다가 시몽의 얼굴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다. 말끔하고 온전하다. 그것은 나뉠 수 없는 것이다. 그게 그 아이다. 그녀는 깊은 안도를 느낀다. 밤이 밖에서 석고 사막처럼 불타오른다.”


    '살아있다'와 '죽었다'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한 사람의 영혼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친구들과 서핑하러 놀러 갔다가 뇌사한 청년으로부터 이야기는 뻗어져 나가 끝내는 그의 심장을 장기이식받는 그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이야기에 나오는 주조연 모두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작가는 의도적으로 모두에게 서사를 부여하며 독자에게 이 모든 이야기가 생생하게 다가오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표지가 서핑의 파도처럼 보이는 것도, 파랑과 붉음이 교차되어 연결되어있는 것도 다 암시하는 바가 있는듯해 추론하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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