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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책추천] <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그믐🌚 독후감/그믐🌚 책 2020. 4. 30. 21:00
구병모 작가님의 책을 한번도 안읽어봤다가,
이번 기회에 몰아서 읽게되었습니다.
작가님 책을 이것들 말고도 두 권 더 빌렸는데 그건 다음에 리뷰하도록 하겠습니다.
위저드베이커리는 2009년 작이고, 단 하나의 문장은 2018년 작입니다.
9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만큼, 작가님이 다루시는 내용도, 그리고 작가님이 고민하시는 부분도 점점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위저드베이커리는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잘 읽었지만,
제 스타일은 사실 아니었고 ㅎㅎ
단 하나의 문장에서 인상깊었던 구절들을 인용하는 것으로 독후감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182p. "나는 말이지요, 세상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나 뛰어난 위인 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이리 툭 튀어나온 송곳처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뭐 낭중…… 가죽을 뚫고 나온다고 하던데. 그러나 뚫고 나오면 뭐할 거냐고, 수틀리면 잘라내버리지 않나. 나는 한 개 한 개의 송곳이 유난히 튀어나오기보다, 그걸 감싼 가죽이 튼튼하기 바랍니다. 한 개의 송곳이 뾰족 뚫고 나오지 않아도 되는 질기고 억센 가죽 주머니를 원해. 사람이 위대하지 않고서도, 사랑이 위험하지 않고서도 그 꼴이 유지되거나 이루어지는 자리를 바라요. 그 누구도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복면을 쓰거나 전신 타이츠를 입지 않더라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곳을요."
단 하나의 문장에 실린 단편 '웨이큰'의 일부입니다.
웨이큰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기업의 이윤논리에 의해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한 남편. 그리고 문제가 발생하자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회사로 불려가 일을 하다 삶을 잃은 남편.
소설의 해설에서 아이들이 피해자였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모두가 미디어를 통해 주목했다는 점에서, 세월호를 떠오르게 했다고 쓰여 있으나,
저는
이천의 화재사건이 겹쳐보였습니다.
291p. "소설 속 아내의 말마따나 '주사기테러'나 '데이터 테러'처럼 우리가 충격적으로 경험하는 테러리즘의 사건들은 엄밀히 따져보면 특정한 조건들의 총합으로 완성된다. 사소하게 치부한 선택들과 합리적으로 내린 결단들이 다만 가시화되지 않았을 뿐 명백한 낱낱의 테러로서 이미 존재해왔고, 고요하던 물이 백 도가 되면 갑자기 끓어오르듯 그 테러들의 누적이 임계를 넘어서면 비로소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상태, 곧 테러리즘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006642
https://n.news.naver.com/article/020/0003283787
https://n.news.naver.com/article/214/0001034809
우리는 더 이상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사건에 대해 가볍게 넘어가선 안됩니다.
결과가 이렇게 될줄은 물론 몰랐으리라 믿지만,
이러한 결과가 나오기 전 하나 하나의 가벼운 혹은 무거운 선택들이 있었을 것이고, 가벼운 선택이었다해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천 화재의 빠른 진상 규명과 현장 수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희생자분들이 하늘에서 평안하시기를,
감히, 무엇으로도 다할 수 없겠지만 유가족분들의 마음의 흉터가 차차 아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74p. "어째서 한 줄의 문장을 썼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누군가의 이해를 구하거나 누군가를 설득하는 용도여야만 한다는 말인가? 또한 그 설득이란 것은 문장이 발설된 즉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가? 한 개의 문장이 사람이 표면 아닌 심부에 가닿기 위해 첩경을 선택해야 하며, 일부러 멀리 돌아가면서 낙석 내지는 낙상의 위험이 따르는 첩첩산중이나 끝내 출구를 잃게 만드는 구절양장 같은 문장은 이 세상에 소용이 없는가? 불필요한 것은 삭제되어야만 하며, 필요성에 절대적 기준이란 있는가? 문장은 지워짐으로써 의미를 완성하는가? 그렇다면 문장은 썼다가 지울 때가 아니라 애당초 쓰이지 않았을 때에야 완벽한 게 아닐까? 백지가 날마다 제출하는 리포트는 사고 능력의 발전에 따라 점점 더 개발 당시의 목적과 멀어져갔으며, 백지가 쓰는 문장은 이윽고 쓴다기보다는 분비하는 데 더 가까워졌다. 백지는 문장을, 분비했다. 개발진은 이를 경이롭게 바라보긴 했으나 발전으로 여길 수만은 없는 입장이었다. 한마디로 백지는, 번거로운 존재가 되었다. 허구의 다정과 위로의 마취제를 팔아서 먹고살아야 하는 개발진에 백지는 그전 같은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여러 단편들이 묶여 있지만, 굳이 이 단편을 가장 마지막에 배치한 것도,
그리고 책 제목이 '단 하나의 문장'인 것도
결국 작가님이 이 책을 통해 가장 하고싶었던 말이 바로 여기에 담겨 있다고 제가 생각하게 된 까닭입니다.
글을 쓰는 작가로서 고민하셨고, 앞으로도 고민할 그것.
한 줄의 문장의 의미와,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
302p. "잊지 말자. 익명 뒤에서 누구나 말을 생산할 수 있고 출처 없는 그 말들이 아무렇게나 퍼져나가는 시대, 그래서 칼날 같은 말들이 횡행하는 이 시대에 가장 먼저 말에 베이는 이들은 말을 목숨처럼 아끼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작가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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