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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책추천] < 오늘의 엄마, 강진아>
    그믐🌚 독후감/그믐🌚 책 2020. 5. 3. 07:30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는 내내,

    마스크 사이로 눈물을 뚝뚝 흘리게 만들었던 책.

    오늘의 엄마를 가지고 왔습니다.



    남자친구와 사별한 그에게, 어머니의 암 선고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지 않았을까요?

    맑았던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벼락.

    엎친데 덮친격

    어떻게 이런 인생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Life is a drama

    이 한 줄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드라마같은 인생, 사실 우리 모두 살아내고 있으니까요.

    5월 8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오늘도 아침에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집을 나선 제가 지하철에서 눈물을 쏟게 한 책의 독후감, 시작하겠습니다.


    41p. "정아가 유치원에 간 건 모두 언니 덕이었다. 자세한 내막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언니의 주장을 사실로 믿고 있다. 유치원에 가지 못했던 언니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단다. 그래서 아홉 살짜리가 동생은 유치원에 보내야겠다고 결심했고, 처음으로 엄마에게 졸랐다. 자신의 것은 요구한 적이 없던 첫째를 엄마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가족 구성원 중 유일하게 조기교육의 수혜를 입었지만, 정작 정아는 자신이 뭘 누리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몰라서. 

     아침 식사 자리였다. 샛노랑유치원복에 모자까지 쓴 정아는 유치원에서 배운 걸 자랑하고 싶었다. 

    "엄마, 엄마가 영어로 뭐게?"

    "뭐라?"

    "엄마가 영어로 뭐냐고, 영어 말이다, 에이비씨디."

    밥을 먹던 엄마는 멍한 얼굴이 되었는데 그 표정에 담긴 위축과 부끄러움과 난처함을, 유치원에 가고 싶었던 언니는 알고 있었다. 중학생 나이에 일터로 내몰린 엄마는 알파벳을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눈치 없는 막내는 아는 체를 계속했다.

    "그것도 모르나. 마더다, 마더. 그라면 언니는 뭐어게?"

    노래처럼 질문하고는 밥을 떠서 입으로 나르는데 언니가 뒤통수를 가격했다. 정아의 입 앞까지 왔던 숟가락이 날아가며 밥알이 튀었다. 아파서라기보다, 샛노랑유치원복을 더럽혔다는 당혹감에 울었던 것 같다. 언니는 계속 때렸다. 정아는 도움을 구하며 엄마를 보았지만 엄마는 여전히 멍한 얼굴이었다. 그때만큼은 엄마가 언니의 폭력을 방관했다. 그다음 등원을 했는지 밥은 마저 먹었는지 유치원복은 빨았는지 따위는 기억나지 않는다. 또렷하게 남은 것은, 엄마는 영어를 모른다는 사실과 그런 엄마를 무시하면 혼난다는 교훈이었다. 마더도 모르는 엄마의 설움을 어린 언니는 알고 있었다. 정아만 몰랐다."


    83p. "없던 병이 생겨서 환자가 된 게 아니다. 낯선 사람들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만지고 옮기는 것에, 다시 말해 종양 자체로 다루는 것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링거 줄을 정리한다고 간호사가 앞섶을 펼쳐 젖이 다 드러나려고 하는데도 당황하지 않는다. 놀란 건 정아뿐이다. 다급하게 흘러내린 환자복을 끌어 올리며 보니 엄마의 눈은 긴장감 없이 풀려 있다. 엄마는 원래 부끄러움에 대한 감각이 정확한 사람이었다. 평생을 빨아 쓴 면 생리대를 자식들 눈에 띄게 한 적도 없고 삶아 둔 속옷을 정아와 함께 개킬 때면 자신의 속옷부터 황급히 빼내었던 엄마다. 딸과도 그렇게 선을 지키던 엄마의 변화가, 정아는 두렵다. 환자 역할에 능숙해질수록 원래의 엄마에게서 멀어지는 것만 같다. 저 환자복 때문일까? 저걸 벗고 후줄근한 엄마의 옷을 입으면 타인과 거리감이 분명했던 엄마 자신으로 돌아가게 될까? 이런 생각들은 병실에서 먹고 자는 정아를 한동안 괴롭혔고 그러는 사이, 새해가 밝았다."


    247p. "불편하고 어색한 얼굴의 주름들을 빠르게 제자리로 옮기며 외할머니는 손녀들을 돌아본다.

    "느그가 고생이다."

    아니라며 세차게 고개를 흔드는 언니는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지만, 목소리 대신 헉, 윽, 뜩, 하는 이상한 소리만 샌다. 정아도 다급하다. 샘솟는 눈물과 콧물을 막느라 외할머니를 잡을 여유가 없다. 가지 말라고, 조금만 더 우리 엄마랑 있어 달라고 애원하고 싶다. 그래도 가려고 하면 폭로해 버릴 거다. 당신 동생 밑에서 꽃같던 우리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낱낱이 고할 거다. 그러니 손 한 번만 잡아 달라고, 어린 나이에 서러웠을 우리 엄마 좀 다독여 달라고 외칠 거다. 그런 줄 모르셨다면, 몰라서 아무것도 못 해주신 거라면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아직은 괜찮다고. 엄마의 숨이 붙어 있으니 뭐라도 듣고 말해 주세요.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손을 만져 주세요, 제발요. 정아는 이중에 뭐라도 내뱉고 싶은데, 언니처럼 꺽꺽거리며 무의미해 보이는 손짓만 반복하고 있다. 그 손을 잡아 준 건 외할머니가 아닌 이모다. 발까지 동동 구르며 이모도 다급한 중이다. 세 여자를 둘러보던 외할머니는 휘유, 하고 긴 날숨을 내뱉고는 천천히 말한다.

    "내 먼저 입구에 있을 끼네, 난제 오니라."

    하고는 몸을 돌려 버린다. 탁, 지팡이가 조금 먼 바닥을 찍고 뒤이어 끌어당기듯 왼발이 착지한다. 직, 오른발이 뒤따른다. 다시 지팡이가 탁. 외할머니는 불편하고 끈질기게 엄마에게서, 당신이 끊어 낸 탯줄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252p. ""엄마는 뭐 하고 싶은 거는 없었나? 취미로라도."

    엄마가 즐거움을 위해 시간을 쓰는 걸 본 적이 없다. 정아에게 엄마는 일하거나 쉬거나 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엄마가 의외의 답을 했다.

    "느그 다 크고 여유 생기면 노인들 돕는 거 하고 싶었다."

    "노인을 돕는다고?"

    정아는 바보처럼 따라 물었다.

    "어, 병원이냐 요양원 같은 데서."

    "호스피스 말하는 거가?"

    "어, 그거."

    정아는 취미를 물었는데 엄마는 꿈을 답해 주었다. 엄마에게 꿈이 있다는 게, 아빠의 기일을 까먹은 것보다 놀랍다. 엄마는 꿈이 있고 구체적인 목표도 있다. 정아는 몰랐다. 자신의 꿈을 강조하고 요구하느라 엄마의 것은 궁금해하지 않았다. 정아는 폭포수에 깎여진 거대한 바위를 바라보며 바삐 머릿속을 뒤진다. 지금 당장, 뭔가를 하나라도 더 물어봐야 할 것 같다. 호스피스를 왜 하고 싶은 건지, 언제부터 그런 결심을 한 건지, 뭐라도 묻고 엄마를 배우자. 그래, 그러자. 정아가 질문을 내뱉으려고 침을 꼴깍 삼키는데, 목덜미 쪽에서 목소리가 퉁겨 오른다. 엄마의 기분은? 이루지 못할 꿈을 말하는 엄마의 마음은? 정아는 입술을 벌린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엄마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희생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엄마의 꿈을 듣고서야 엄마가 자신에게 해 준 모든 것이 희생이었음을 깨닫는다. 정아는 언제나 엄마에게 요구하기만 했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엄마였으니까. 엄마는 키워 주고 먹여 주고 들어주고 챙겨 주는 사람이니까. 이토록 일방적이기만 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정아를 찌른다."


    263p. "분명 엄마가 있었는데, 없어졌다. 정아는 그 변화에 새삼 놀라는 중이다. 조금 전까지 여기서 칙, 크, 시끄럽게 산소를 들이키던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퉁퉁 부은 몸을 여기다가 벗어 놓고 대체 어디로 가 버렸을까. 어디 가면 한 번쯤은 돌아올 법도 한데 엄마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인상깊은 구절 정리하면서 또 우느라 혼났네요.

    인상깊었던 부분을 잘라 올리는거라 전문을 읽어야 오롯이 그 감정이 산답니다!

    한 번 읽어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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