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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책추천] <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그믐🌚 독후감/그믐🌚 책 2020. 5. 8. 16:30
정희진 작가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 책을 실제로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제 취향을 저격한 제목으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 작가님 피셜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그 첫번째라는 이 책은,
작가님이 책을 읽고 난 후 그 책의 독후감을 정리하여 묶어낸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너무 흥미로웠고, 이 책을 통해 저 역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 잔뜩 생겼습니다.
13p. "선악은 규범적이지만, 강약은 맥락적인 개념이다. 갑을 관계는 상황에 따라 다르고, 세상은 갑을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갑을(甲乙)에 속하지 않은, '병정무기경신임계(丙丁戊己庚辛壬癸)'도 있다. 이는 본디 순서(위계)가 아니라 순환이다. 고정된 약자나 강자는 없다. 관계 속에서 약자만이 지닐 수 있는 무기를 찾아야 한다.
15p.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 사상의 핵심은 재현의 윤리이다. 누가 말하는가. 누가 듣는가. 누구의 목소리가 큰가.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사람들이 듣기 싫은 말은 무엇인가. 사회는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이러한 권력 관계의 동학은 교육 현장, 출판 시장, 미디어 같은 구체적인 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 글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타자화(他者化)란 "나는 그들과 다르고 그 차이는 내가 규정한다."는 이른바 '조물주 의식'이다. 이러한 자기 신격화는 민주주의와 예술의 적이다. 윤리적인 글의 핵심은 다루고자 하는 존재(소재)를 타자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남을 억압하는 사람은 자신을 해방하지 못한다. 실천적이고 진보적인 글은 '불쌍한 이'들에 대한 리포트가 아니라 글쓰기 과정에서 재현 주체와 재현 대상의 권력 관계를 규명하고, 다른 관계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다."
싸가지 없는 진보_강준만
26p. "여야 문제가 아니더라도 강자와 약자, 중심과 주변 사이에는 일반적인 법칙이 있다. 집권당에 비해 야당은 자원이 없다. 강자의 자원이 세속적인 것, 이를테면 돈과 미디어, 폭력(공권력)이라면, 약자는 보이는 자원만으로는 승부가 어렵다. 약자의 유일한 자원은 약자라는 위치 자체에서 나오는 도덕과 논리(언어)다."
지젝이 만난 레닌_슬라보예 지젝 · 블라디미르 일치리 레닌
51p. "사회는 서로 충돌하는 가치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어떤 올바름은, 필연적으로 다른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보편적이고 일률적인 올바름은 없다. 'PC'는 불간으한 개념이자 문제를 한 가지 원인으로 축소하는 환원주의의 산물이다. 책에 따르면, 환원론은 실천 없는 이들의 무의식적 위치 이동이다. 어차피 안 될 일, '올바르게 보이는' 주장이나 해보자는 것이다."
표현의 기술_유시민 · 정훈이
66p. ""소수의 사악함보다 다수의 어리석음이 사회악을 부르는 때가 더 많습니다. 정치적 글쓰기는 사악함과 투쟁하는 일이 아니라 어리석음을 극복하려고 하는 일입니다."(102쪽) 저자는 낙관적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 사회는 '사악한 다수'가 점령했는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_신영복
86p. "주민들은 일상이 투쟁이고 정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화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일상과 전시가 따로 있다는 것, '군사주의'와 평화는 대립한다는 사고다. 평화는 '평화 교육'이나 '비폭력 대화'가 아니다(왜 이런 프로그램의 수강료는 특히 비쌀까). 평화운동가인 어느 수녀님의 말대로 "평화로운 대화를 하려면 속에서는 불이 나는 법"이다."
연암 박지원이 글 짓는 법_박수밀
90p. "글쓰기의 목적이 사회 변화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글쓰기 자체가 사회를 다시 짓는 과정이다. 글쓰기의 목적은 결과에 있지 않다. 과정이 선하고 치열하면 결과도 그러하다. 글쓰기는 다른 삶을 지어내는 노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_홍은전
104p."공부의 필요와 의미는 스스로 정하는 권리다. 사람들은 진학 차원이 아니더라도 "공부해서 손해 볼 일이 없다.", "인간은 평생 공부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주부나 장애인이 공부하고자 할 때는 태도가 다르다. 이들은 사람이기보다 '역할'(안마, 가사노동……)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들 자신을 위하는 일은 사회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간은 사회의 것이다. 근대 초기 미국에서 초등학교 의무 교육 제도가 도입되었을 때도 주부와 노예는 예외였다. 인간은 스스로 대단한 문명인이라 생각하지만 차별의식은 문명의 몇 배를 앞서간다. 장애인이나 여성이 자기 언어를 지니는 것은 지식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전복적인 행위다. 사회적 약자에게 공부는 취업, 성장과 같은 다양한 의미 외에 자신의 삶과 불일치하는 기존의 체계에 도전하는 무기가 된다."
엄마 냄새 참 좋다_유승하, 을밀대 위의 투사 강주룡_박정애, 식민지 시대 여성노동운동에 관한 연구_서형실
118p. "강주룡(1901~1932년). 짧은 생애를 살았고 자료도 드물지만 사연은 길다. 농사를 짓다가 스무 살에 다섯 살 아래 남성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독립운동에 참여했는데 5년 후 남편이 사망한다. 강주룡은 정성을 다해 남편을 간호했지만 시집은 "서방 잡은 년"이라고 그를 중국 공안에 신고했다. 그것도 죄라고 유치창에 있다가 풀려난 후, 친정 식구를 부양하기 위해 고무신공장 노동자가 된다. 당시 일본 남성의 임금이 1백 원이라면, 조선 여성의 임금은 25원이었다. (2014년 기준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0퍼센트 내외,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의 6배다.) 젖먹이를 옆에 놓고 여성 노동자들은 130도가 넘는 공장에서 고무 찌는 냄새를 견뎌야 했다. 12시간 노동, 성희롱, 욕설과 구타는 기본. 불량품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코를 풀어도 벌금을 내야 했다. 이런 상태에서 회사가 17퍼센트 임금 삭감을 선언하자 파업, 해고, 구속에 지친 그는 평양의 유명한 정자인 을밀대(乙密臺)에 올라간다.
"우리는 임금 삭감을 크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이 평양 전체 고무 직공의 임금을 깎는 원인이 될 것이므로 죽기로서 반대하는 것입니다. 평양의 2,300명 동무의 살이 깎이지 않기 위해 내 한 몸뚱이가 죽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내가 배운 지식 중에 가장 귀한 것은 대중을 위해 죽는 것이 가장 명예롭다는 것입니다. 사장이 이 앞에 와서 임금 삭감을 취소하지 않는 한 결코 내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 이기지 못하면 죽은 거나 다름없으니 죽을 각오로 싸울 뿐입니다."
내가 배운 지식 중에 가장 귀한 것은 대중을 위해 죽는 것. 나는 울컥한다. 중요한 것은 타인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배운 지식 중 '가장 귀하다'는 그의 마음이다."
우리 균도_이진섭
128p. "이처럼 인생=길이라는 통념은 다양한 경험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 상투성의 원단,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은 단지 선택하지 '않은' 삶일 뿐이다. 선택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갈 수 없는 길이고 이미 삶이 아니다. 외출 준비에 한나절 이상 걸리는 장애인, 여성이 피하는 밤거리, 치매와 광장공포증 환자에게 길은 도전이자 치열한 정치다. 비장애인의 걷기, 걷기 투쟁이 많지만 이진섭, 이균도 부자에게 길은 그들과 같지 않다. 이 책은 길의 의미가 사람마다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하게 한다.
장애인이나 아픈 사람, 화상 환자, 우울증 환자가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나라처럼 거리에서 장애인을 보기 힘든 사회도 드물 것이다."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_김재명
139p. "사실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계기는 제목을 잘못 읽어서다. "나는 평화를 기원하기보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약자의 정의가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연대의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18쪽) 평화는 투쟁이라는 저자의 시각이 반가웠다. 오인한 제목은 "평화를 믿지 않는다"였다."
멀고도 가까운_리베카 솔닛
148p. "감정 이입은 글자 그대로 감정이 이동하여 다른 곳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여행, 공간적 단어다. 하나의 장소가 곧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는 지형을 이루고, 감정 이입은 그 안에서 상상하는 행위다. 감정 이입은 이야기꾼의 재능이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방법이다.(13쪽) 남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 함께 느끼고, 상대를 위해 느낀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감정 이입하는 경청은 나도 당사자가 되는 '엄청난' 일이다. 감정 이입이란 자신의 테두리 밖으로 나와서 여행하는 과정, 자신의 범위를 확장하는 일이다. 감정 이입을 두려워한다면 성장할 수 없다.
타인의 속으로 들어가야 타인의 현실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시각적이다. 단어의 어근 'path'는 그리스어에서 열정이나 괴로움을 뜻한다. 비애(pathos), 병리학(pathology), 동정(sympathy)같은 단어의 어원이 모두 같다. 감정이 '오솔길'을 뜻하는 고대 영어 'path'와 동음이의어라는 사실은 우연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감정 이입은 우리가 어떤 것에 관심을 쏟고 그것을 보살피면서 어떤 곳에 가보고 싶은 욕망의 여정이다.(269쪽)"
혐오와 수치심_마사 너스바움
158p. "티브이 시사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서는 검사의 취조 방식에 대해 이런 말들이 오간다. "정확히 피의자를 찌르되, 몸속에 칼을 넣고 비틀면 안 된다." 수사만 하면 되지, 불필요한 모욕을 주면 안 된다는 얘기다. 모욕 주기는 권력 남용을 넘어 인간성 타락이다."
159p. "나는 '엉뚱한' 부분에서 감동받았다. 미국의 검찰 표기다. 우리의 영문 표기는 'Prosecution Service'. 물론 미국도 이 단어를 사용한다. 흥미로운 것은 판례를 표기할 때인데, 검찰이 로건이라는 사람을 고소할 경우 'People vs Logan'이라고 쓴다. 주마다 다르지만 미국의 검사는 선출직으로서 민중, 유권자(people)를 대표한다. 그렇다면, '검찰 개혁'은 개혁의 주체와 대상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검찰 스스로 민중을 대신한다는 각성이 전제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 아닐까."
모성적 사유_사라 러딕
204p. "사라 러딕의 <<모성적 사유-전쟁과 평화의 정치학>>은 윤리학의 분기점이 된 고전이며 캐럴 길리건의 <<다른 목소리로>>에 이어 돌봄과 보살핌 철학을 본격적으로 제기한다. 러딕은 보호 대신 보존애(preservative love)를 제시한다.(3장, 126쪽) 보존애는 책임, 보호자의 성찰과 인지, 협상 능력을 요구한다.(이 글 제목 "썩지 않은 사랑"은 보존애를 내가 직역한 것이다.)"
노란 우산_류재수 · 신동일
208p. "비보다 빗소리처럼 사건보다 사건 이후가 중요하다. 미국은 9·11 이후 정부의 대처가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주었다는데 세월호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듯이, 그 반대다. 세월호 특별법은 첫번째 빗소리인 셈인데, 간신히 이어지는 가늘고 가쁜 숨소리마저 도려내는 듯 조용한 잔인함만 들린다. 회피와 침묵, 비는 계속 내리는데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무서운 일이 있을까.
세월호를 기억하자고 다짐할 필요도 없다. 비처럼 세월호도 삶의 일부다. 어두운 이야기도 남의 일도 아니다. 누구나 밤마다 잠들지 못하고 베갯잇을 적시게 되는, 보고 싶은 이들이 있지 않은가. 슬픔과 분노를 감추지 않고 눈물과 함께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게 하라."
만들어진 우울증_크리스토퍼 레인
215p. "한국 사회가 싫어하는 인간형은 진보나 여성주의 이런 쪽(?)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문제 제기, 정확한 질문이 많은 사람도 공격적이라고 기피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모나거나 어두운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사유는 인간 본성(호모 사피엔스!), 세월호는 영원히 생각할 문제다.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일상이다. 행복 강박을 버리고 비극을 허락하라. 불안 없는 영혼이 더 위험하다.(319쪽)"
구약성서
226p. "성서학자들은 <마태복음>의 '오른뺨 대주기'가 고상해 보이지만, <레위기>의 율법이 더 공정하다고 해석한다. 이 원칙은 '지나친 정의감', 즉 복수의 한계를 정한 것이다. 당한 것 이상으로 보복하려는 사태를 막기 위한 법이다. 받은대로'만' 돌려주어야지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서의 원뜻은 정의 실현인데도 불구하고, 이 말은 보복과 전쟁을 부추기는 잔인한 의미로 변했다. 신체형(身體刑)에 대한 묘사가 현대인에게 거부감을 주지만 이는 근대 사법 제도와 차이가 있을 뿐이다."
227p. "분노의 시작은 억울함이다. 물론, 세상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문제는 "누구의 억울함인가? 정당한 억울함인가?" 이다. 분노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부정의하다. 가해자의 피해의식이나 권력자의 분노는 규범이고, 약자의 억울한 감정만 분노로 간주된다. 분노를 표출해도 되는지를 고민하는 사람은 대개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다. '남성'은 이런 의문 자체가 없다. 자기 뜻은 분노가 아니라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다수의 억울한 마음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멘토, 치유자를 자처하는 자들을 불러(?) 고결한 가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비열한 폭력인 용서와 화해 이데올로기로 약자의 상처를 짓이기고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죄의식과 자책까지 떠넘긴다. 그래서 우아함은 가진 자의 성품이요, 흥분과 분노는 약자의 행패가 되었다."
한 칸의 사이_배병삼
230p. "처음 한자를 배울 때 좋을 '호(好)'를 이해하는 방식은 대개 "남자랑 여자랑 있으면 좋다"다. 배병삼의 지적이 없었더라면 나도 계속 그렇게 알았을 것이다. 1899년 발견된 갑골문에 따르면, 고대인들은 여성이 어린 자식을 가슴에 끌어안고 꿇어앉아 있는 모습(好)을 좋음,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글자라고 한다.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어머니와 자식이다."
스물한 통의 역사 진정서_고길섶
234p. "눈물을 금지하는 원리는 같다. 어렸을 적 부모나 교사에게 억울하게 혼났을 때 울면 안 된다. "뭘 잘했다고 울어!" 한 대 더 얻어맞기 십상이다. 때린 사람은 우는 사람이 불편하기 마련이다. 가해자의 논리는 "(나는 가해자가 아닌데) 네가 우니까 내가 가해자가 된 것 같아 기분 나쁘다. 고로 네가 가해자."다. 자기 행동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심지어 동의와 웃음을 강요한다. 아이고 사건은 눈물이 불법을 넘어 체제 위협으로 간주된 예다. 눈물=체제 위협. 눈물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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