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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책추천] < 중간착취의 지옥도, 남보라, 박주희, 전혼잎 >그믐🌚 독후감/그믐🌚 책 2021. 9. 1. 21:11
54p 비정규직 중에서도 간접고용 노동자의 급여가 유난히 적은 이유는 단 한 가지 차이 때문이다. 노동력을 사용하는 사람과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해 있다는 것, 그게 이들을 비정규직 중에서도 제일 밑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하는 순간, 착취는 필연적이다.
62p. 하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급계약은 용역업체가 원청의 일터에 노동자를 보내면 노동자들이 원청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 ‘불법파견’이다. 원청이 용역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어놓고 노동자는 파견 노동자처럼 직접 지시하며 부린다는 얘기다. 원청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용역업체가 사실상 아무 권한이나 결정권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용역업체 대부분은 전문 기술이나 사업체로서의 독립성 없이 원청에 종속된 채 노동자를 모아 공급하는 역할만 한다. 이는 파견업체와 다를 게 없다. 그러니 노동자들은 자신이 용역 노동자인지 파견 노동자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원청과 자신이 속한 중간 업체가 어떤 계약을 맺었건 파견 노동자처럼 일하기 때문이다. 간접고용 세계의 가장 큰 두 축인 용역과 파견은 이렇게 한 몸처럼 얽혀 있다. 적지 않은 노동자는 자신이 어느 쪽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자신이 어떤 권리를 갖는지도 모른 채 일터로 향한다.
아니, 어쩌면 용역인지 파견인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간접고용 세계에서 노동자는 중간착취와 저임금, 해고와 산업재해에 똑같이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137p. 현우씨는 “아무리 제도를 잘 만들어놓아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중간착취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조업에 노동자 파견을 금지하는 건 옳은 방향이라고 봐요. 그럼에도 이로 인해 종종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건, 제도가 아니라 사람때문이에요.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법망을 피해가거나 악용하려고만 하지 말고, 관련 법이 만들어진 취지에 공감해줬으면 좋겠어요.”
212p. 노동자들의 고혈로 굴러가는 간접고용 노동 시장의 구조가 지금은 굳은 벽돌처럼 단단해 보일지라도 결국 사상누각이라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언젠가는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잠깐이나마 노동법을 공부했고, 인권이라는 키워드가 붙으면 한번쯤 더 스쳐봤던 나로서는,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한때 나는 내가 모든 불의에 반응해야 하고, 어떠한 불공정도 그냥 넘겨선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모든 이의 아픔에 공감해야 하는 사람이고, 모든 불의에 분노하며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낱 작은 사람인 나는 그럴 수 없고, 꼭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요즘 들어서야 받아들이고 있다.
알쓸범잡 tv프로그램을 정말 흥미롭게 봤는데, 거기서 정재민판사님이 “젊을수록 판사의 판결 형량이 세다”고 언급하신 장면이 있다. 처음에는 법을 기준으로 엄벌하고자 하나, 살아갈수록 생각보다 삶은 원칙대로, 뜻대로만 살 수 없음을 이해하고 형량이 약해지는게 일반적인 경향이라는 것이다.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고싶어했던 그 순수를 젊을 때의 치기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아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포기해버리느냐는 또 다른 얘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불편과 불공정, 그리고 아픔은 다른 사람의 관심을 통해 세상에 더 널리 알려지곤 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어떤 삶을 살든, 어떤 아픔을 느끼든 절대 관심 갖지 않을거야고 선을 긋는 것은 사실 내 삶과 우리 세상에 아무런 도움도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세상은 흐르던 관성 그대로 흘러가곤 한다.
움직이던 것을 멈추는데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멈춰있는 것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모든 이의 아픔에 찾아가 공감하고, 일일이 그 자리에 함께할 순 없지만,
그들의 아픔을 한 번 더 돌아보는 관심과 다른 사람의 삶을 살펴보는 호기심을 멈추지는 않아야지.
세상은 언젠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아직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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