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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라색을 싫어했다.
중학교 교복을 입고 황순원 작가님의 소나기를 공부할 때였을까? 선생님은 소녀가 좋아하는 보라색 꽃이 소녀의 죽음을 암시한다고 하셨다. 보라색은 죽음을 상징하는 색이라며…….
어린 나에게는 그게 큰 의미로 다가왔었나보다. 여즉 보라색을 께름칙한 색이라 여기고, 누군가가 좋아하는 색에 대해 내게 물어봤을 때 보라색을 제외한 색이면 다 좋다고 대답했던 것을 보면.
그러나 내 옷장을 열어보면 그 안엔 다양한 명도의 보라색상의 옷들이 들어차있다. 내 사무실 책장 위 가장 긴 시간 자리를 지킨 형광펜 역시 보라색이며, 오늘 택배로 받아본 후드티 역시 보라색이고, 내가 오늘 사온 꽃마저 보라색이다.
나는 보라색을 좋아해왔던 것이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선에서 여지껏.
보라색에 대한 누군가의 해석은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나의 신념체계를 건드렸고, 그것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그로부터 10년 언저리가 흘러 나는 다른 사람의 의견이 아닌 온전히 내 취향의 좋아하는 색을 찾아낸 것이다.
며칠 전에는 단골 미용실이 생겼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어렸을 때는 엄마 손에 이끌려 미용실을 갔고, 엄마 취향의 스타일을 군말없이 입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옷을 고르고 쇼핑할 때 작은 말다툼이 생기기 시작했고, 지금은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기로 타협봤다. (물론 생각보다 잘 되지는 않는다) 엄마의 취향과 내 취향이 구분되어가며 나는 이제 나의 스타일을 찾아가고 있다.
삶이란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이란 누군가의 말마따나 오늘도 발견하는 내 취향 속에서 나는 나를 찾아가고 있다.'🌚 그믐 조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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