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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책추천]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 룰루 밀러 >
    그믐🌚 독후감/그믐🌚 책 2022. 6. 1. 21:04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38p. “나는 데이비드가 마시던 모닝커피가 코로 넘어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하지만 그게 커피였을 가능성은 없다. 그는 자신의 지각능력에 해가 될까봐 평생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카페인까지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런 장소가 존재한다는 너무나도 믿을 수 없는 사실 앞에서, 그의 코로 넘어간 건 어쩌면 물이나 허브 차, 아니면 다른 무언가였을 것이다.”

    171p. “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나의 괴상한 애착과, 그가 내게 살아가는 방법을, 내가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내 인생을 되돌려놓을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관해 골똘히 생각했다. 그에게는 내가 존경할 만한 많은 면들이 있었다. 그의 냉소.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꽃들에 대한 그의 몰두. 내 아버지의 쇠솔로 된 밀대 빗자루를 연상시키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팔자수염. 그의 강철 같은 근성. 그 어떤 불운이 자기 앞에 닥쳐와도 주저앉기를 거부하던 그 투지 넘치는 결연함.”

    226p. “천천히 그것이 초점 속으로 들어왔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어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다정하게 흔들어주는 손, 연필로 그린 스케치, 나일론 실에 꿴 플라스틱 구슬들-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점들이 내가 우생학자들에 대해 그토록 격노하는 이유다. 그들은 이런 그물망의 가능성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들은 애나와 메리 같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고, 자신들이 받은 빛을 더욱 환하게 반사할 수 있는 이 실질적인 방식들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메리는 애나가 없었다면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 이런 것. 이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죽는 것과 사는 것의 차이. 그게 아무 가치가 없다고?”

    246p. “그의 아픔을, 어느 정도는 고뇌를 느낄 그를 상상해보는 일… 그것은 나에게 경이로운 효과를 발휘했다. 그 상상은 무신론자에게는 가장 금기시되는 판타지로 내 피부를 콕콕 찔러댔다. 어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밖, 혼돈의 차가운 수학 속에 결국 일종의 우주적 정의가 존재한다는 판타지 말이다.”

    262p.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거야.” 정말로 이 물음은 모든 사람마다 다 다르다.”

    264p.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애를 빌려 자신이 깨달은 통찰을 이렇게 자신의 삶과 버무려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내다니!” 가 이 책을 읽고 최초로 떠오른 감상이었다.

    이 책의 인기가 너무 좋아서 모든 도서관이 다 대출중이라, 처음 가보는 고림다온작은도서관까지 방문하여 양지해밀도서관의 책을 상호대차해서야 빌려 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의 신비함과 인간의 작음을 경험함과 동시에 무신론 기반의 책이라 마음껏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가늠했는데, 책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읽으며 결국 어떤 우주적 정의는 존재한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지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가장 통쾌한 부분은 이 책의 마지막, [변화에 관한 몇 마디]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점이 바로 책을 읽으면서 우주적 정의의 실재에 대해 이해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최선의 영향력이 바로 거기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최근 자기 소개를 쓸 일이 있었는데, 모든 당연한 것과 보편적인 것을 의심하며, 무언가를 쉽게 일반화시키는 데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무언가를 알아갈수록 오히려 나는 그것을 전혀 모른다는 것을 더 처절히 느끼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요새는 어떤 흔한 당위 명제조차도 선뜻 말 꺼내기가 어렵다. 무슨 이야기를 들으면 그 맥락과 문맥을 모두 살펴보아야지 마음이 편하고, 그제야 생각을 정리해 볼 마음이 생겼다. 그런 상태에서 책을 읽으며 무언가를 쉽게 분류하고, 정의내릴 수 있다는 오만이 얼마나 타인을 쉽게 타자화하고, 무서운 결과를 낼 수 있는지 보고, 다시 한번 스스로를 겸허하게 돌아보게 되었다.

    진리는 늘 그렇듯이 명확하지만, 진리 외의 것에 말을 얹는 것을 조심하고 또 조심할 것. 늘 겸손한 자세로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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