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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책추천] < 여성, 존엄을 외치다 , L.줄리아나.M.클라센스 >
    그믐🌚 독후감/그믐🌚 책 2022. 6. 24. 19:58

    여성, 존엄을 외치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저항
    70p. “이와 관련하여 베벌리 미첼은 폭력의 뿌리에는 타인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무능이 있다고, 다시 말해 타인을 인간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폭력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녀에 따르면, “우리가 서로 기뻐하고 깊이 슬퍼하며, 즐거워하고 너무 아파하며, 행복에 겹다가도 큰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공유하는 같은 인간으로 보지 못한다면, 서로 학대하고, 잔인하게 대하고, 비하하고 파괴하려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일도 쉬워진다.” 역으로, 폭력에 저항하겠다는 개인의 결단에 핵심적인 것은 공감 개념에 뿌리를 둔 대안적 틀이다. 다시 말해, 폭력의 잠재적 희생자들을 인간으로, 곧 진짜 사랃믈로 인식하는 능력이다. 에릭 세이버트가 상기시킨 대로 “[누군가의] 어머니이며 아버지이고, 이모이고 삼촌이며, 형제이자 자매이고, 조카들이며, 할머니이며 할아버지들임을…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꿈과 희망이, 장점과 단점이, 미덕과 부덕이 있음”을 아는 능력이다.”

    82p. “사무엘기 상권 25장에서 아비가일의 말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저항이 지닌 의미와 그 성격을 보는 중요한 관점을 보탠다. 아비가일의 말은 자기 자신의 상황은 물론 그녀 주변 사람들과의 상황을 바꾸는 데 무력한 피해자가 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가 베푼 음식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말도 본질적으로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녀는 지혜의 정수를 구현한 존재, 곧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보여주는 존재에 대한 최고 모범으로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아비가일은 왕들에게 조언하는 자로서 여성 지혜의 역할을 한다(잠언 8,15). 지혜 전통에 존재하는 음식과 말의 관련성에 근거해서, (그리고 신구약 중간기에서 매우 중요해진) 지혜의 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음식을 섭취하는 은유로 생각하면 생명의 빵이라 할 수 있다.”

    141p. “수산나 사례에서 구원자 하느님의 이미지는 본문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젊은 다니엘이, 혹은 사마리아 판본에는 훨씬 더 어린 아이들이 수산나를 구하려고 등장한 것은 하느님이 개입하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개입하셔서 구원하는 이미지는 그 자체로 수산나에게 자행된 불의에 결정적으로 도전하는 강력한 전망을 제시한다. 이 서사에 따르면, 하느님은 한쪽 편, 즉 이 이야기에서 힘 있고 영향력 있는 재판관들에 맞서서 폭력에 희생당한 여성의 편을 들고, 폭력의 모든 현상 중에서도 강간의 폭력에 대응하여 강력한 저항 감각을 전달한다. 이러한 하느님의 이미지는 현재에 힘을 갖는다. 강간과 (남성의) 권력 남용에 대해 “안 돼”라고 말하는 하느님을 고백하는 것은 성폭력의 고통에 맞서서 얼마나 힘 있는 증언인가!”

    148p. “젠더 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주장을 할 수 있다. 과거에 그랬고, 오늘까지도 계속해서 여성의 삶을 위협하는 대규모의 직접적 폭력 또한 가부장제라는 구조적 폭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구조적 폭력은 여성들을 “열등한 성”으로 보는 여러 형태의 문화적 폭력을 통해서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가령 토마스 아퀴나스가 여성을 “잘못 태어난 남자”라고 말한 것도, 공동체 안에서 여성들을 하와, 이제벨, 들릴라로 취급한 것도 문화적 폭력의 예다. 성경 인물 중에서 이런 여성들을 언급한 것은 성경 이야기 자체가, 그리고 그것을 수용해 온 방식이 여성들을 대상화하고 소유하고 비난하고 비하하면서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로 여기는 이 세상을 그대로 둔 채, 여성들이 무엇을 원하고 꿈꾸고 바라는지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을 너무도 잘 보여 준다.”

    165p. “두 번째로, 이 여성들이 흘리는 눈물은 그들이 처한 불의한 상황을 강력하게, 그리고 눈에 보이게 표현해 준다. 웜스가 말한 대로, 이들은 “여성 혐오 사회에서 언어로 표출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내용을 누물과 한숨으로 표현”하고 있다. 벨 훅스가 제안한 대항 언어, 곧 지배 권력에 도전하는 또한 “말대꾸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개념을 염두에 두면, 이 여인들의 애도는 지배 이데올로기와 매우 대조적이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전쟁과 폭력을 포용하여 단지 더 많은 폭력을 낳고 십자포화에 스러진 무고한 희생자들을 남길 뿐이기 때문이다.”

    232p. “배신, 착취, 부정, 분개, 의심, 불신, 분노, 침묵, 이 모든 기억을 우리가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입장에 대한 불신이라는 거대한 심연을 뛰어넘어 우정과 연합을 구축할 수 있을까?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실은 무척이나 힘든 일일 것이다. 이 일은 무시하기가 더 쉬운 상황에서 우리가 의지적으로 먼저 들으려고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 때로, 우리 여성들의 공동체는 세상의 악을 지적하듯이 우리 안에 있는 악과도 기꺼이 대면하여 그것을 고백해야 한다. 그것은 고통스럽더라도, 그리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서로 함께 행동하려는 결단을 요구한다. 서로의 모습 속에 있는 진정한 차이들을 존중하고, 그 차이들이 우리의 골칫거리가 아니라 우리의 연대가 지닌 장점으로 보는 자발성을 요구할 것이다. 미국에서 흑인과 백인 여성으로, 이스라엘과 레바논 여성으로, 남아프리카의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으로, 아시와와 유럽 여성으로, 테러리스트의 아내와 테러 피해자의 아내로, 서로 놀랍도록 고립된 채 정의를 위해 행동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사치다.”

    260p. “이 책에 포함된 여러 이야기에서 우리는 전쟁, 강간, 헤테라키, 위태로움의 폭력에 저항하여 비폭력적 실천들을 행한 여성들을 살펴보았다. 이 책이 주목한 여성 인물들은 여성, 남성, 아이 할 것 없이 사람의 몸과 영혼을 공격하고 침해하며 파괴하려 하는 생명 부정의 상황에 맞섰다. 그리고 폭력이 확연하게 표명되는 상황에, 때로는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분명 해를 끼치는 폭력들에도 굴복하기를 철저히 거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앞 장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저항의 행위들은 자주 평범하고, 누군가는 너무 범속하다고 할 만한 것이어서 완전히 놓치고 지나갈 수도 있다. 셰에라자드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리츠파는 애도를 한다. 타마르는 울부짖는다. 아비가일은 음식을 차려 준다. 츨롭핫의 딸들은 의견을 말한다. 수산나는 기도한다. 하가르는 통곡한다. 사라는 웃는다. 입타의 딸과 그 친구들은 상실을 애도한다. 룻과 창세기 38장의 타마르는 속임수를 써서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길을 내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우리가 본 것처럼 이러한 작은 행위들은 처음의 의도를 훨씬 넘어서 영향을 미친다.”

    263p. “폭력에 저항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으는 것은 무엇보다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세계사를 보면 불행히도 다양한 해방 투쟁에서 여성의 역할이 망각되어 사라질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신문 [트라우]의 최근 기사에서, 마르얀 스베흐만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네덜란드의 이야기를 하면서 수많은 저항운동에서 얼마나 자주 여성이 역사의 페이지에서 사라지는지를 밝힌다. 야코바 판 통어런, 오버스테헌 자매, 마리 안네 텔레헨의 용기를 예로 들면서, 스베흐만은 일반적으로 여성 저항의 특징인 어려운 이들을 돌보는 일 같은 여성의 기여가 얼마나 자주 무시되고, 혹은 특별하거나 대단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식으로 축소되는지 보여 준다.”

    270p. “구원은 누군가의 고통과 절망을 정직하게 이름 짓는 일, 그리고 주님께서 그를 구원하시기를 기다리는 일 이렇게 두 차원으로 이해 된다. 이러한 이중적 이해는 이 책에 포함된 여성의 저항 이야기들을 틀 짓기에 유용하다. 고통과 분노 그리고 절망 속에서 여성들이 외쳐 부르는 애가 속에 다름 아닌 해방자 하느님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하느님은 하가르에게 하셨듯 그들이 경험한 광야를 생존의 장소로 바꾸실 것이다. 그리고 수산나의 경우처럼, 극적인 방식으로 거짓과 권력의 악용이 그녀의 삶을 끝장내기 직전에 그녀를 구해 줄 구원자를 보내 주실 수도 있다. 하느님이 폭력을 멈추실 수도 있고 또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성들이 어떻게든 그들 자신의 해방을 위해 참여할 때 저항의 행위들로 이어진다.”

    듣던 팟캐스트에서 지나가며 잠깐 언급된 책이었는데,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도서관에 신청해서 빌려보았다. 본문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하느님’이라는 표현이나 책 속에 나온 정경 외 외경을 포함한 구절을 생략하지 않고 모두 포함했다.

    성경에 많이 나와있지도 않지만, 예배 말씀 속에서도 여성의 이야기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한 사람을 다양하게 접근해서 이렇게 저렇게 살펴보는 남성 인물 설교와는 달리, 여성 인물 설교는 ‘보아스를 만난 룻’(결혼 설교)처럼 결혼 관련 설교나, ‘밧세바에게 한 눈 판 다윗’(남성 인물의 시련)처럼 주인공의 조연역할로 다뤄지곤 한다. 그래서 정말 그냥 궁금해서 빌려 보았다. 궁금하긴 한데 어디서 배워야할지 몰라서.

    이 책을 읽을 때가 창비에서 보내주신 ‘노본스’ 가제본을 읽을 때와 맞물렸는데, 그래서 더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된 여성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떤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상황을 바꾸기 위해 짜낸 누군가의 지혜는 본인을 살리거나 또는 그 일가 친척, 그리고 민족을 살렸다. 축소되어서도 지워져서도 안 될 기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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