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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책추천] < 거짓들의 진실 , 존 마크 코머 >
    그믐🌚 독후감/그믐🌚 책 2022. 6. 23. 14:54

    거짓들의 진실
    : 이 시대를 잠식한 영적 기만 파헤치기
    49p. “반면, 예수님은 생명을 창조하시며 선하고 아름답고 참된 모든 것을 수호하시는 분이다. 특히, 사랑. 하나님은 곧 사랑이시며, 마귀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중이다. 마귀의 목적은 사랑을 파괴하는 것이다. 마귀의 목적은 한 번에 하나의 관계씩, 한 공동체씩, 한 국가씩, 한 세대씩 파괴하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뉴스만 틀면 혼란과 학살의 소식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악에 관한 세속 이론들이 인간의 극악한 행동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전쟁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 것이다.”

    71p. “목사로서 나는 사회정치적 스펙트럼 전체를 아우르는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앉아야 한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좌파와 우파 모두 이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 그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이념은 우상숭배의 일종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형이상학적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 하나님 없이 유토피아로 들어가는 길을 찾으려는 세속적 시도다. ‘이념’에 대해 내가 아는 가장 정확한 정의는, 진리의 일부를 가져다가 전체로 삼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정신과 마음을 스스로 거짓의 감옥에 가두고, 그 거짓은 우리를 분노와 불안으로 몰아간다. 이념은 자유를 약속하지만, 오히려 정반대의 것을 낳는다. 이념은 영혼을 확장하고 해방시키기는 커녕 위축시키고 속박시킨다.”

    88p.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성기에서 전해 내려온 것은 빈정거림, 냉소주의, 조병과 권태, 모든 권위에 대한 의심, 모든 행동 규범에 대한 의심, 그리고 [못마땅한 것을] 회복시키려는 마음 대신 악하게 빈정거리며 판단하는 끔찍한 성향입니다. 이런 것이 우리 문화에 만연하다는 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너무 깊이 빠져서 이것이 상황을 보는 다양한 시각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조차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아이러니가 우리의 환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91p. “예수님에게는 이런 분노의 어조를 좀처럼 볼 수 없다. 예수님이 아주 가끔 그런 어조를 쓰실 때는 언제나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망가뜨리고 있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두고 말씀하실 때였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사람들 귀에 거슬리는 것들, 불쾌한 것들, 인기 없는 것들을 말씀하셨고, 그로 인해 결국 죽임을 당하셨다. 하지만 그분의 어조는 대개 부드럽고 지혜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 것’을 ‘사랑’으로 보는 오늘날 서구의 정의와 달리, 예수님은 ‘사랑 안에서’ 끊임없이 잘못을 지적하셨다. 예수님과 신약 기자들은 기만이 시험에, 시험은 죄의 종노릇에 연결되어 있으며,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132p. “시인 메리 올리버는 “관심이 헌신의 시작이다” 라는 말을 했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그분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출발점은 심플하게 그분의 영과 진리로 우리의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매일, 매주 하나님께 관심을 집중하는 것. 그분을 생각하는 것. 그분에 관해 깊이 생각하는 것. 그분을 제대로 아는 것. 하나님에 관한 예수님의 비전에 따라 ‘자신을 내주고, 창조적이고, 후하고, 흔들림 없고, 서로를 사랑하고 기뻐하는 삼위일체 공동체’로서의 하나님을 올바로 보는 것. 하나님에 관한 예수님의 놀랍도록 매력적인 비전에 따라 우리 자신을 형성해 가는 것.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책임이다.”

    151p. “건강하고 자유로운 사람들은 이런 내적 욕구들을 스스로 관리하고 가지치기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쾌락이 행복과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안다. 쾌락은 도파민과 관련이 있고 행복은 세로토닌과 관련이 있다. 쾌락은 순간의 좋은 느낌이다. 반면, 행복은 장기적인 만족이다. 내 인생이 지금 이대로 풍요롭고 만족스럽다는 느낌이다. 쾌락은 욕심에 관한 것이지만 행복은 욕심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264p. “우리는 찬찬히 그리고 솔직하게 오늘날의 도덕적 이슈들에 대한 예수님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그분의 지혜는 견줄 데 없는 지성과 분별력과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분의 지혜를 찾다 보면, 인류 번영에 대한 그분의 비전이 좌파와 우파 양쪽 모두와 크게 부딪히는 부분들이 적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초기 기독교를 연구한 래리 허타도는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이라는 널리 알려진 책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불린 소수의 유대인 집단이 불과 몇 세기 만에 이도교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로마제국을 복음으로 물들인 이야기를 전해 준다. 허타도는 교회가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 것은 세상 문화에 보조를 맞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과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다음과 같은 교회의 다섯 가지 독특한 특징은 로마제국의 문화와 너무 달라서 눈에 띄었다.
    1. 교회는 다양성, 평등, 포용을 매우 중시하는 다인종, 다민족 공동체였다.
    2. 교회의 구성원은 사회경제적 스펙트럼 전반에 고루 퍼져 있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매우 중시했고, 많이 가진 자들에게 적게 가진 자들과 나누라고 가르쳤다.
    3. 영아살해와 낙태에 철저히 반대했다.
    4.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평생 사는 것’이라는 결혼과 성에 관한 비전을 철저히 고수했다.
    5. 개인적 차원에서나 정치적 자원에서나 비폭력적이었다.”

    267p. “사람들은 종교에 버금가는 헌신과 열심을 정치에 쏟아붓는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새로운 종교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치열한 전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우상숭배인 ‘이념’에 갇혀 있다.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보다 이념이나 정당에 더 충성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 내 마음 속에서도 이 전쟁을 느낀다. 우리는 이 전냉을 거부해야 한다. 이 전쟁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 밖으로 끌어내고, 우리의 도덕적 나침반을 망가뜨려 생명과 평화로 이어지는 방향을 가리키게 만든다.”

    278p. “탈기독교 문화는 기독교 이전 문화가 아니다. 탈기독교 문화는 기독교에서 벗어나면서도 기독교의 열매는 즐기려는 시도다. 탈기독교 문화는 신앙의 위안은 유지하면서 복음으로 인한 대가, 헌신, 개인적인 뜻에 대한 제약은 버리려는 시도다. 탈기독교 문화는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샬롬은 본능적으로 갈망하면서도 개인적인 뜻대로 하는 상황은 유지하려는 시도다.”

    284p. “이제 가장 기본적인 훈련을 살펴보자. 사실, 이것은 훈련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예수님의 도를 훈련하는 환경이다. 바로 ‘교회’다. 주일에 강대상을 중심으로 모이는 이 모임. 테이블에 둘러앉는 훨씬 더 작은 규모의 공동체, 혹은 내가 추천하는, 두 방식의 혼합.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든 간에 우리는 ‘홀로’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 예수님은 ‘제자’(단수)를 두신 적이 없다. 예수님은 ‘제자들’(복수)을 두셨다. 예수님을 따르라는 부르심은 예나 지금이나 그분의 도를 따르는 공동체로 들어오라는 부르심이다.
    예수님을 혼자가 아니라 ‘함께’ 따르면, (1) ‘마귀’의 거짓말과 예수님의 진리를 분별하고, (2) 성령으로 ‘육체’를 이기도록 서로 도우며, (3)’세상’에 대한 반문화로 기능하는 강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이렇게 할 때 영혼의 세 적들의 중력을 거부할 수 있다.”

    304p. “이것이 우리가 영적 전쟁의 개념을 회복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마귀의 악이라는 현실을 부인하면, ‘예수님이 사랑하고 섬기라고 하신 사람들’을 마귀 취급하게 된다. 진짜 사탄과 싸우지 않고 사람들, 심지어 사람들의 집단 전체를 사탄으로 몰아가 공격하게 된다. 그 결과, 마귀, 육체, 세상이라는 세 적들의 미움과 폭력과 어둠에 맞서 싸우지 않고, 치유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세상에 오히려 ‘더 많은’ 미움과 폭력과 어둠을 더한다.”

    나는 이전까지만 해도 사실 낙태에 허용적인 입장이었다. 모두가 사랑을 통해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니며, 강간 등의 폭력 속에서 생존본능에 따른 임신의 경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땅한 예외 규정이 없는 무조건적인 금지와 반대는 오히려 법의 감시를 벗어나 암암리에 규제의 원 의도와는 다르게 더욱 더 건강하지 않고, 사람의 몸을 해치는 방식으로 살 길을 찾아 헤메이게 된다. 책을 읽으며 생각을 한 번 더 정리할 기회가 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낙태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나쁘므로 무조건 아무도 낙태할 수 없다고 일반화시키는 것에는 반대한다. 시간이 흐르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과정 속에서 의견이 변할 수 있겠지만 지금 내 생각은 그렇다.

    그러나 한 가지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 것은, 교회에서 낙태의 금지를 말할거라면 우리는 낙태를 금지시킨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아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낙태를 고려했던 사람에게 낙태를 포기시킨 거라면 우리는 나서서 태어난 아이를 함께 돌보고, 일자리를 함께 알아봐주며, 양육에 대한 기술과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면 우리는 그 법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를 우리가 직접 만들어가야 한다.  어떻게 차별 없이 모두가 공정한 세상을 만들 것인지 함께 고민하며 실천해가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책무를 다하지 않아 세상에서 법 철폐를 또는 법 제정을 요구할 때, 여전히 세상이 악하기 때문이라며 손가락질하며 내려다 볼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자리에 함께 서서 곪아가는 내부를 들여다 보고 예수님께서 그러셨듯 낮은 자의 마음을 돌보아야 한다. 나쁜 '사람들'을 볼 것이 아니라 그 '문제 행동'을 보고,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혼자가 되어선 안 된다. 내가 홀로 볼 수 있는 세상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점점 혼자가 익숙해지는 세상 속 공동체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자들이다. 함께 보아야 더 멀리 보고, 더 멀리 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지금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은 참 귀하다. 이 전쟁 속에서 하루의 작은 승리와 실패를 공유하고 격려하며, 반드시 올 그 나라의 임재를  함께 기다리는 동역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은 후 게시하는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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