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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믐 일기] 기분이 태도가 되게 하지 마라?
    🌚 그믐 조각 2020. 3. 11. 01:46

    '기분이 태도가 되게 하지 마라.'

    한참 SNS에 유행처럼 돌았던 말이다.

    그리고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나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기분이 태도가 된다는 건 뭘까?

     

    나는 지난 몇주간 근무할 때 나의 부정적인 감정이 근무 태도가 되는 것을 보았고, 그것을 경계하기 위해 지난 주 기도제목을 나눌 때 해당 구절을 이야기하면서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한 주동안 이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역시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기분이 태도가 된다는 건.

    무슨 뜻일까?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았다.

     

     

    나의 쾌 또는 불쾌함을 느끼는 감정이, 어떤 일이나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가지는 입장이나 자세가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이나 상황에 닥쳤을 때, 다양한 입장이나 의견을 고수할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것과 또 그 상황에서 겪은 것을 반영된 입장일 것이다. 이때 나의 감정이 아닌 오로지 이성으로만 상황에 대해 판단해야 한단 이야기일까?

     

    나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사실 기분이 나빴다. 마치 사람의 '감정'을 중요하지 않은 것, 혹은 과해선 안되는 것, 주책맞은 것으로 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기분'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로봇도 아니고 무언가를 결정하는 사안에 대해 감정없이 결정하는건 온전한 나의 의견이 될 수 없다.


    물론 사회생활에서 내 기분에 치우쳐 상대방을 존중하지 못하거나, 상식선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문제이다.

    그러나 예의, 예절이 우선시되는 이 나라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분에 치우쳐서 문제를 결정할까 싶은 것이다.

    주로 이런 구절을 기억하고 되뇌이면서 스스로를 조심시키는 사람은,

    평소에 얼마나 자신의 기분보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사람이었을까?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문제를 떨어져서 문제로만 바라보자, 상황을 바라보자는 의도는 알겠으나,

    정작 이 문장이 필요한 사람들은 신경도 안쓰고 아마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만 주구장창 되뇌이며 자책해오진 않았을까?


    이런 문장이 유행하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기보다 과한 것으로 여기고, 배제시키려 애썼을지.


    내가 스스로 내 태도가 감정에 치우쳤다고 느낀 그 주는 과연,

    얼마나 지치고, 피곤했으며 힘들었던 주일까


    내가 알아주지 못한 나의 감정은 해결되지 않았기에,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태도로 드러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자책하는 굴레에 빠졌다.

    문제는 내 기분이 아니라, 그 기분을 (1) 인지하지 못했고, (2) 인정하지 않았고, (3) 적절히 대처하지 않았기에 생겨나는 것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감정을 완전하게 배제하고 상황을 바라보기는 불가능하다.


    그 전에,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이해하며,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오히려 끊임없이 나의 기분을 파악하고 스스로를 돌보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나를 챙기고, 나아가 결국 남을 챙기게 되는 사회생활의 기술 아닐까?


    그러니까 나는 당분간 태도가 감정에 휘둘리는 걸 막지 않을 생각이다.

    오히려 그동안 이해받지 못했던 내 감정들을 스스로 알아차려가면서, 하나씩 이름을 붙여줄 생각이다.


    오늘 나는 다른 직원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졌었다.

    사실 나와 그의 입사기간이 달라, 그게 당연한 것임에도 그 사실은 나를 우울하게 했다.

    우울한 나를 위해 퇴근하면서 오랜만에 좋아하는 쿠키를 샀다.


    그리고, 사실 이 문제에 대해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없음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신이시여,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변화시키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평온의 기도, 라인홀트'


    아, 그래.

    나는 지금 지혜를 배우는 중이다.

    오늘 나는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고 우울한 시간을 가졌다.

    이 감정은 내가 지혜를 배워가는 과정 중에 생긴 일로, '지혜열' 로 이름을 지었다.


    지혜열은 태어난 지 반년쯤 지난 유아에게 일어나는 원인불명의 발열로, 대개 지혜가 생기기 무렵 발생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나는 지금 지혜열을 앓고 있으며, 이는 곧 지혜를 깨우쳐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어제보다 더 지혜롭게, 상황을 구별하고, 그 가운데에서 생기는 내 감정을, 나를 이해해 갈 내일의 내가 기대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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