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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독후감 ] [ 책추천 ] <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
    그믐🌚 독후감/그믐🌚 책 2022. 11. 24. 20:28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했냐
    :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도망가지 않았다_명함이 없던 여자들의 진짜 '일' 이야기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5p. "우리는 평생 일해 온 여성들에게 명함을 찾아주고 싶었다. 언제나 N잡러였지만, '집사람'이라 불린 여성들, 이름보다 누구의 아내나 엄마로 불려 온 여성들, 고단한 삶 속에서도 일의 기쁨을 느끼며 '진짜 가장은 나'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여성들, 남존여비 시대에 태어나 페미니즘 시대를 지켜보고 있는 여성들.

    여성들이 해온 다양한 일들은 '경제활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가사 일이 법적 노동으로 인정받은 것은 2021년 5월이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이후 무려 68년이 지나서야 가사노동자는 노동자로서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제자리를 지키며 이 사회를 지탱해온 '필수노동'의 대부분이 돌봄·보건의료·환경미화 등 여초산업(여성 노동자 수가 많은 산업)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사회에 꼭 필요한 일들을 여성들은 그동안 제값을 받지 못한 채 해왔다."


    39p. "다시 태어난다면 나를 위해서 살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그랬던 것이 굉장히 후회스러워요. 손녀들이 서로 다른 문방구 간다고 싸우면 저는 둘 다 가요. 만날 양보하면 나이 들어서도 양보할까 봐. 옛날엔 양보하는 게 미덕이었지만 요새는 미덕 아니야. 나는 그게 싫더라고요."


    73p. "2011년부터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일하고 있어요. 지난해(2021년) 홍보모델로 선정돼서 전국에서 오신 봉사자분들이랑 사진을 찍었는데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그때 홍보모델 명함을 만들어주셨는데 기분이 묘했어요. 내 인생 처음으로 명함을 받은 건데 어디 줄 곳이 없더라고요. 조금 서글펐어요."


    90p. "손가락을 '딱' 부딪쳐 특정 집단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우주 빌런(악당)이 2022년 대한민국에 상륙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빌런은 만 60세 이상의 여성들을 잠시 데려가겠다고 마음 먹었다. 많은 사람이 비탄에 빠졌을 때 어떤 이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나이 든 여성들이 경제에 기여하는 비중이 크지 않으니 최악의 상황은 아니지 않을까?'

    좀 더 적극적이거나 분석적인 이들은 '숫자'와 '손실'을 따졌다. 2021년 상반기 기준 임금근로자 2064만6569명 중 60세 이상 여성은 153만3410명. 노동력 7.4%의 증발을 두고 안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노동이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면세점 이하 고령 여성 근로자의 수 등을 셈해보는 이들도 있었다. '세금으로 만든 노인 알바', '혈세로 만든 허드렛일' 같은 노인 노동을 향한 혐오적 시선이 낙관에 일조했다. 딱! 그들이 증발하자, 대한민국은 마비됐다. '필수노동'에 딱 종사하는 노동자 4분의 1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필수노동자 4명 중 1명은 60세 이상 여성 노동자다. 통계청 지역별 고용조사 마이크로데이터(2021년 상반기)를 분석한 결과, 전체 필수노동자 336만7900명(임금근로자 기준) 중 60세 이상 여성은 87만4185명(26.0%)이었다. 50세 이상 여성을 포함하면 그 비중은 42.1%까지 치솟는다. 전체 임금근로자에서 희미했던 고령층 여성의 존재감은 '필수노동'이라는 돋보기를 대면 놀랍도록 뚜렷해진다."


    120p. "모진 세월을 지내왔지만 말할 곳은 없었다. 농촌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고립이다. 집성촌이 대부분인 농촌에서는 사실상 온 마을이 시댁이다. 정성숙 작가는 "쉬쉬하는 도시와 달리 가정폭력이 '보란 듯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짚었다. 여자들은 각자 다른 곳에서 시집을 오는 반면, 남자들은 온 동네가 자기네 친적이니 걸릴 게 없다는 것이다."


    140p. "'어른'이 실어다줘서 나갔다 왔어요. (어른이 누구에요?) 어른은 우리 집 양반. (남편을 어른이라고 칭하세요? 선생님도 어른이시잖아요.) 나는 배운 것이 없으니 어른이 아니여. 그 양반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나왔응께 어른이여. 나는 안 나왔응께."


    174p. "엄마, 아내, 며느리, 식당 주인이라는 네 겹의 역할이 충돌할수록 순자씨의 노동 강도는 높아졌다. 점심 장사를 마치고 식당 내실에서 자는 쪽잠이 유일한 휴식일 만큼 바쁘게 살았지만, 허무함이 밀려왔다. 지나고 보니 '내 것'은 없었다. 순자씨가 학비를 대준 오빠는 교장 선생님이 돼 사회적 존경을 받았지만 그건 오롯이 오빠의 것이었다. 가게 명함도 집 명의도 남편의 것이었다. 순자씨는 남편에게 인감증명서를 떼어주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선포하고, 집을 공동명의로 바꿨다."


    177p. "공부를 못한 게 한이었던 순자씨는 "우리 딸들 통장에 돈은 못 꽂아줘도 머리에는 넣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했다. 세 딸에겐 "대학생이 돼라" "일하는 여자가 되라"고 잔소리를 했다. 딸들은 나처럼 힘들게 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게 순자씨의 원동력이었다."


    193p. "1980년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난 딸들은 이러한 노동시장 전환기에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교에서는 남녀가 평등하다는 교육을 받고, 가정에서는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여성도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노동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여성 일자리의 양극화, 이어진 신자유주의 분위기는 '엄마의 노동'을 '나의 노동'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했다. "나는 엄마와 달리 이름이 남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혜원씨의 것만이 아니었다."


    194p. "하지만 딸들은 생각과는 다른 현실에 당혹감을 느낀다. 성별과 상관없이 능력을 인정바을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일터에서의 자신은 '노동자' 이전에 '여성'이었다. 202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직장 내 성차별적 괴롭힘 실태와 제도 개선 방안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성별 업무 능력에 대한 일반화와 낙인, 애교와 친절 강요 등 성차별적 언행을 경험한 비율(23.9~35.5%)이 남성(19.6~33.0%)보다 높았다. 이 경험이 이직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율도 여성(59.9%)이 남성(42.9%)보다 높았다. 여성에게 적대적인 조직 문화가 경력 지속의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270p. "인터뷰는 했지만 담지 못한 분들이 더 많다. 그분들은 마지막에 자신보다 가족을 생각했다. 자식들에게 해가 될까봐. 자식들이 자신이 보낸 삶을 다 알게 되면 힘들어할까봐.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존경하지 않게 될까봐 등등. 여러 이유로 자신의 삶이 기록되는 것을 포기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우리가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이 책 곳곳에 담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누구나 삶의 관찰자, 기록자가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이 기획을 시작했다. 평생 자신의 이름 대신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로 불린 여성들의 이름을 찾아주고 싶었다. 우리는 글에서 그들의 이름을 열심히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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