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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책추천] <알로하, 나의 엄마들 , 이금이 >
    그믐🌚 독후감/그믐🌚 책 2020. 4. 20. 04:30

    알로하

    책을 읽으면서 알로하라는 단어의 뜻에 대해 처음 알았습니다.

    365p.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알로하'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배려, 조화, 기쁨, 겸손, 인내 등을 뜻하는 하와이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었다. 그 인사말 속에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기쁨을 함께 하자는 하와이 원주민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의 글을 읽으면, 뉴스를 보면 가슴에 울컥하고 뜨거운게 올라오곤 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 인물에만 집중할 뿐 그 인물을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밀어준 가족들, 특히 그 배우자에 대해서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잊혀진 여성 독립투사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강박만으로 이것저것 찾아보긴 했지만,

    그마저도 몇번 뒤적이다 만 것이 다입니다.


    이 책은 소설일뿐이지만, 몰입력이 장난아니어서 마치 세 사람의 실제 위인전을 읽은 것 같습니다.

    나랑 살아 온 시대가 전혀 다름에도 이만큼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2020년 올해 여러 책을 읽었지만, 현재까지 Best로 꼽고 싶은 책입니다.


    놀랍게도 제가 소설책을 즐겨 읽기 시작한지 몇년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김영하 작가님의 책을 시작으로, 소설에 재미를 붙였지만,

    요즘 여성작가들의 소설에 눈을 뜬 것 같습니다.

    다음 소개할 책 역시 여성 작가의 책입니다. ㅎㅎ


    다른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 알로하, 나의 엄마들에 대해 다시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by. 이금이

    창비



    13p. "버들은 아버지의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울 때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한글, 일본어, 산수, 율동을 배우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어린 나이에 고개를 세 개나 넘어 다니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하지만 강 훈장이 세상을 떠나자 윤 씨 혼자 두 아이의 월사금을 댈 수 없었다. 둘 중 하나가 그만두어야 한다면 당연히 딸이었다. 2학년을 다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둔 버들은 그때부터 집안일을 하며 동생들을 돌보았다. 고만고만한 사내 녀석들만 세명이었다. 이듬해 윤 씨는 버들의 바로 아래 동생 규식을 입학시키면서도 버들은 보내지 않았다. 버들은 서운하고 억울했다. "지는요? 규식이도 가는데 지는 와 안 보내 줍니꺼? 지도 핵교 다시 보내 주이소." 버들은 대들기도 하고 사정하기도 했다. "가시나가 지 이름자 읽고 쓸 줄 알면 되제 무신 공부가 더 필요하나?" 윤 씨 말에 버들은 밥도 먹지 않고, 집안일도 하지 않고 골을 부렸다. "니, 어매 죽는 꼴 볼라꼬 이러나? 그래, 내 매봉산 용소에 가가 빠져 죽을 테이까네 니 맘대로 하그라." 윤 씨가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서자 버들은 겁이 덜컥 났다. 어머니마저 없으면 고아가 되는 것이다. 버들은 방을 나가려는 어머니 다리를 부둥켜안고 다시는 학교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 뒤 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글자들을 잊지 않기 위해 부지깽이로 땅바닥에 써 보며 마음을 달래는 것 뿐이었다."


    책 초기에, 세 주인공 중 한 명인 버들의 꿈이 나옵니다. 글자를 배우고 공부하고 싶다는 버들의 꿈은 현실과 문화를 이기지 못한 어머니의 가스라이팅에 의해 멀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이 꿈이 책 말미에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 하나하나가 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164p. "버들은 그동안 유럽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전쟁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자기와 상관없는 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문을 읽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미국은 전쟁하는 나라에 군수물자를 만들어 팔아 많은 이윤을 남긴 덕에 강대국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지난해 영국 상선이 독일 잠수함에 공격당해 배에 타고 있던 미국 사람이 백 명 넘게 죽는 일이 일어났다. 그 일을 계기로 미국 정부가 참전을 하자 미군 기지가 있는 하와이의 경제가 좋아져 일꾼들 품삯이 오르고 조선인들도 덕을 보았다. 신문엔 동포들의 상점 개업 소식이나 사업에 성공해 성금을 많이 낸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또 한편에선 전쟁 덕분에 잘 먹고 잘사는 것이다. 그에 비해 조선 소식은 안 좋은 것뿐이었다. "기래서 힘없는 나라 백성이 불쌍한 거이지. 미국 봐라, 제 나라 사람이 죽었다고 대번 전쟁한다고 나서는 거이. 기런 나라가 뒤에 떡 버티고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갔나."

    경제침체였던 나라들이 주변나라의 전쟁을 통해 다시 일어나는 상황을 우리는 자주 봐왔습니다. 힘없는 나라 국민의 설움.

    우리 후손들은 경험하지 않기를, 그리고 물론 꿈이겠지만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3p. "서 노인까지 박용만 편을 들자 버들은 더 애가 탔다. 그런데 여자들도 뒷전에 물러나 있지 않았다. 전부터 있던 대한부인회 회원들이 조선의 3·1운동을 계기로 대한부인구제회를 새로 설립했다.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만세 운동에 가담했다 다치거나 감옥에 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신문에서 각 지역 대표단 이름을 보던 버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빅아일랜드 지방회 임원 이름에 장명옥이 있었다. 빅아일랜드에 동명이인이 있는 게 아니라면 고베 대신여관에서부터 함께한 그 장명옥이 맞을 것이다. 버들은 이민국 복도에서 사진과 다른 늙은 남편에 절망하며 울던 명옥을 떠올렸다. 그랬던 사람이 조국을 위하는 일에 나선 걸 보자 마음이 이상했다. 카후쿠에서는 줄리 엄마가, 단체 활동에 소극적인 남편과 달리 적극적으로 나섰다. "내사 마 조선에 돌아갈 맘 없다. 여서 내 딸들 맘껏 핵교 보내고 자유껏 살 기다. 조선한테 쥐뿔 받은 기 없지만서도 내가 와 발 벗고 나서는가 하면 고향 떠난 우리한테는 조선이 친정인 기라. 친정이 든든해야 남이 깔보지 몬한다 아이가. 일본인 노동자들이 툭하면 파업하는 기 우째서겄노. 힘센 즈그 나라가 뒤에 떡 버티고 있어가 노동자들이 하올레하고 맞짱 뜰 수 있는 기다."


    240p. ""내사 마 여 올 때는 내한테 해 준 기도 없는 그깟 조선 망해뻐리든 말든 상관없었는 기라. 그란데 아를 놓고 보이 그기 아이데. 나라가 일본한테 멕혀가 있으면 내 자식도 곁방살이하는 집 얼라맨키로 평생 주눅 들어가 살 기 아이가. 당장 밥 한 숟갈 들묵어도 독립하는 데 힘을 보태야 않겄나. 까막눈 무지랭이도 조선 사람이면 다 그레 생각한다 아이가." 홍주 말대로 조선인 노동자들은 돈을 벌어도 자신보다 조국을 위해서 쓰기 바빴다. 돈을 모아 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 단체에 후원금을 내기 위해 더 악착같이 일했다. 제아무리 잘 살아도 나라 없는 조선 민족이 받는 설움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독립운동에 열심을 냈던 모든 선조께 감사하다.


    352p. "엄마는 아버지가 일본군과 싸우다 다리도 다치고 병도 얻은 거라면서 훌륭한 분이라고 했지만 내겐 조금도 와닿지 않았다. 그동안 고생한 엄마가 아버지를 좋게만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로즈 이모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사실 이모는 전에도 엄마 없는 데서 가끔 아버지 흉을 보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대놓고 했다. 나는 마이클을 업고 재우는 척하면서 이모와 엄마의 대화를 엿들었다. "나라를 독립시켰나, 자기 이름을 날렸나. 몸만 베려 갖고 왔다 아이가. 니 혼자 아들 키우니라 고생한 공도 없이 이기 뭐꼬? 자그만치 십 년이다. 골병든 기는 닌데, 와 정호 아부지한테 보약이다, 사골국이다 해 바치노? 니는 느그 신랑 밉지도 않나?" 로즈 이모가 실밥 뜯던 쪽가위를 흔들며 엄마에게 말했다. 나는 어려서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이모가 콕 짚어 말한 것 같아 시원했다. "내는 뭐 부처가? 내도 밉고 원망스럽다. 그 맘을 말로 할라카면 끝이 있겄나. 니 말대로 독립도 몬 하고 몸만 저레 돼 갖고 집에 온 마음은 우짤까 싶어 불쌍타. 언젠가 독립이 된다면 정호 아부지나 내가 한 고생도 보탬이 된 기겄제. 그라믄 영 헛산 기는 아이다. 우쨌든 지금은 몸 보해가 사람 꼴 만드는 기 우선이다. 아들 아부지 아이가." 우리한테 아버지를 좋게 이야기할 때와 달리 어둡고 힘없는 목소리였다. 엄마의 진짜 마음을 안 게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건 불쌍한 아버지가 아니라 훌륭한 아버지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 역시 화자의 입장에 공감이 되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었는데, 아래 페이지를 읽으면서 이해했다.


    393p."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렸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창에 붉은 햇살을 머리에 인 코코헤드산이 가득 들어왔다. 창밖을 보니 엄마는 벌써 카네이션밭에 나가 있었다. 꽃이 활짝 핀 밭은 분홍색 양탄자 같고, 졸업 시즌에 팔 카네이션 씨를 심으려고 갈아 놓은 밭은 황토색 양탄자 같았다. 또 한옆엔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초록색 양탄자가 펼쳐져 있었다.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기에 그저 아름다워 보이지만은 않았다. 연민이 밀려왔다. 모두 불쌍했다. 나는 물론 엄마, 아버지와 오빠, 로즈 이모, 그리고 송화까지도……. 이 세상에 불쌍하지 않은 게 없었다."


    불쌍함, 연민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우리 동네도 아닌 외지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내어 생명력을 맘껏 발산한 3명의, 그리고 실제로는 훨씬 많았을 사진 신부들이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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